♥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세 권의 책을 집안에 들이며

카잔 2010. 11. 13. 23:59

 

세 권의 책을 허벅지 위에 떨어지지 않게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 11월 들어, 우리 집에 세 녀석들이 '침입'했다. 내 허락없이 우리 집에 들어왔기에 침입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책 구입을 자제하리라는 내 의지를 짓밟고 들어왔으니 '정복'이라 표현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렇다. 11월에도 기어이 나는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한 권은 선물 받았다.) 먼저, 나를 정복한 두 권의 책. 『왜 도덕인가?』와 『책을 읽을 자유』.


『왜 도덕인가?』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도덕주의의 유익과 한계'는 요즘 나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가 아니라, '중 하나'라는 게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요즘의 내가 자주 도덕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분명하다. 도덕주의, 곧 도덕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입장은 분명 고결하지만, 순진해 보인다. 순진하다는 인상은 아마도 도덕주의 자체가 아니라, 현실인식이 빈약한 일부 도덕주의자들 때문이리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도덕주의자는 유물론에 흠뻑 젖어 보아야 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어서 육체, 시스템, 현실을 정신, 마인드, 이상보다 열등하다고 여긴다. 저명한 시인은 멋지게 표현했다.
 

영혼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의 말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는 도덕주의자의 말이라면, 나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도덕을 자기 삶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다는 도덕주의에 덧붙일 만한 가치를 언급했다. 도덕주의자들은 합리주의, 자기 수련, 신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더다는 도덕주의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세 가지 모두 건강한 자유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이기는 하다. 그러나 환희, 공동체 정신, 의혹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 더다가 덧붙인 세 가지의 가치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도덕주의는 숭고하고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도 우리를 숭고하게 만들고, 세상에 공헌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결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반복과 오해가 생긴다. 더다에 의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미국인은 유순한 소공자와 착하고 얌전한 소녀를 결코 높이 평가하지 않"고, "미국인의 전형은 허클베리 핀과 스칼릿 오하라, 바트 심슨"이다. 하나같이 규칙을 무시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비도덕주의자? 반도덕주의자? 이것 역시 도덕이라는 가치로 폄하한 언어일 뿐이다.

도덕은 니체에게도 중요한 단어다.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전복의 대상으로서 중요했다. 니체에게 도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뛰어넘기보다는 신과 국가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그래서 전복해야 할 가치다. 도덕에 굴복하는 삶은 초인의 길을 포기한 삶이다. 내가 니체의 명제가 다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도덕의 계보를 파헤친 그의 논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망치질은 국가와 도덕 뿐만 아니라, 내 머리를 흔들기에도 충분했다.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을 읽는 수고를 하느냐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 카프카


스무살 무렵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분명 도덕주의자였고, 모든 현실에 관련한 것들을 이상보다 열등한 것이라 여겼다. 이후 서른 살까지, 내가 현실 인식이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이후부터는 빈약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괴테, 니체, 마르크스로부터 받은 조금씩의 도움으로 현실 인식을 키워오던 중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명제에도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슨무슨 주의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사유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들이 신앙, 도덕, 국가였다. 이것이 나의 결론인지, 니체를 읽은 당연한 귀결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의도적으로 도덕주의의 반대편에 서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진정한 중용은 양 극단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만이 맛보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주의에 관하여, 나를 흔들어 깨울, 마음 속 견고한 바다를 깰 수 있을 법한 책을 찾던 중이었다. 도덕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도 아닌, 감정적인 비난도 아닌 균형있고 건전한 견해를 만나고 싶었다. 저자가 도덕을 찬양하든, 멸시하든지는 상관없다. 그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잘 전개한 책! 도덕주의자의 전형을 보여 준 칸트에서부터 도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파한 니체가지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훑어 주는 책이면 더욱 좋겠다.

『왜 도덕인가?』가 적임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구입했다. 도덕주의적인 삶을 살아 온 내가 니체의 메시지에 전율했다가, 다시 니체와는 다른 메시지에 설득당하고 싶은 것이다.  왜 도덕이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논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일방적이고 당연한 주장이 아닌, 반대편의 견해를 오목조목 따져 드는 성실함과 예리함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이왕이면 니체의 망치질로 손상된 도덕의 가치를 말끔히 복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덕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좀 더 도덕주의에 대한 반감을 견지하고 싶다.

사실, 내 삶의 방식은 도덕주의적인 모양으로 결론지어진 것인지 모른다. 이번 양양 여행 중 하조대에 갔을 때, 명상에 잠겼는데, 생각이랄 것도 없는 뻔한 결론이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 뻔한 결론을 옮겨 본다. '바다에서 하는 다짐은 늘 같다. 한 마디로 잘 살자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자!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순수하게 살자!' 스스로도 허무했던지라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내 나이 스물 하나였을 때의 다짐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네.' 나는 원점이 아닌 곳에서 사유하고 싶다. 도덕주의가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죽이는 듯 하다. 옳은 것이니까, 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듯 하다. 도덕주의에 대한 내 반감은 의도적이지만, 치열하다. 그 치열함은 사실 중용을 위함이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 장정일, 『공부』 서문에서.


『왜 도덕인가?』의 목차를 펼쳤다. 와! 머리를 즐겁게 해 줄 내용들이 가득해 보인다.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정치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등 목차가 품고 있는 담론부터 폭넓고 다양하다. 우리에게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가?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시민의식은 과연 회복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으로 구성된 챕터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예상했던 대로 칸트(대표적인 도덕주의자다)와 롤스(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의' 학자다)가 보인다. 존 듀이의 등장은 뜻 밖이다. 자, 이제 읽을 준비는 완료 되었다. 시간아, 나를 외면치 말아 다오.


지금 나는 '책을 읽을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선물 받은 『책을 읽을 자유』는 그 자유로운 시공간 속으로 흠뻑 빠져들때 집어 들고 싶은 책이다. 내공 대박인 로쟈의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책읽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깃든 놀이요, 깊은 배움이 있는 학습이다. 80페이지까지 책을 읽은 바로는 정말 그렇다.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저자의 전작 『로쟈의 인문학 서재』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런 저자들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의 다른 책들을 구입하여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로쟈 이현우는 내게 자신의 전작을 읽게 만드는 저자다. 다음 책이 나와도 나는 선택할 것이다. 그런 책을 선물 받았으니, 참 기쁜 일이다.


『회의주의자 사전』은 언젠가 교보문고(강남점)에서 살펴 본 후, 구입하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책값이 비쌌다. 32,000원짜리가 인터넷 서점에서 50%이라는 달콤한 특가 세일을 하길래 덜컥 주문했다. 허허. 싸다는 것이 구입 이유라니. 하하. 3권의 책이 손에 들어 온 이유가 갈수록 단순해지고 저렴해지네. 이것이 나다. 이 글의 모양새가 그렇듯이, 초반의 반짝 열정이 내 성정이요, 용두사미가 내 주특기다. 특기를 최대한 살리려면, 어서 슬그머니 맺는 것이 좋으리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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