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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남자'의 안녕이 궁금하다

카잔 2010. 11. 16. 02:35


나는 책과 독서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를 묻기도 하고,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아는 경우에는 이렇게 묻는다. 어디까지 읽었어요? 전화통화로도 종종 묻는데, 수화기 너머로, 두번째 것까지 읽었어요, 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김영하의 단편집에서 <엘리베이터를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었다는 말이다. 뭐가 더 재밌어요? 첫째 건 답답했고 두 번째가 재밌었어요. 그의 대답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첫번째 소설은 이해가 잘 안 되어 답답하셨구나, 라고. 그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주인공이 선생님을 닮은 것 같아요."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했으니.


6권의 책으로 구성된 김영하 컬렉션을, 나는 지날 달에 샀었다. 『엘리베이터를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도 그 중 하나였고, 『오빠가 돌아왔다』의 감동으로 인해 기대감으로 <엘리베이터>를 펼쳤다. 동해 바다가 내다 보이는 호텔에서, 한가로이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단편을 중간 즈음까지 읽고 나서야 그가 <엘리베이터>를 읽고서 느낀 답답함은 이해불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에서 느껴지는 그야말로 답답함 혹은 안쓰러움의 감정이었다. 그는 주인공에게서 답답함을 느꼈지만, 나는 주인공에게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리뷰는 매우 개인적인 기쁨과 감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어느 남자의 하루다. 24시간도 아닌, 아침부터 그가 귀가한 저녁까지다. 그 날은 주인공에게는 참 이상한 하루, 모든 일이 뒤틀어져버리는 지극히 재수 없는 하루다. 왕재수(없음)의 시작은 부러진 면도기로 인해 수염을 반만 깎은 상태로 출근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엘리베이터의 고장이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목격한다. 출근 시간이 빠듯하지만, 주인공은 남자를 살짝 건드려 생사를 확인한 후, 뛰어내려가면서 119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친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빌려보지만(주인공은 핸드폰이 없다), 돌아오는 것은 이상한 눈초리 뿐이다. 그 사이 버스가 와서 주인공은 버스에 올라탄다. 지갑을 놓아두고 온 것을 알게 된 것은 버스카드를 꺼내려고 바지 뒷주머니를 만질 때다. 기사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하지만, 어림없다. 그 때, 반대편 트럭이 주인공이 탄 버스를 들이받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와중에도 주인공은 도착한 경찰에게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이야기를 하지만 도무지 믿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재수없음의 시작이다. 잠시 후, 사고 버스에 탔던 승객들은 다음 버스를 타게 된다. 이 때, 주인공은 신이 났다. 어느 정도인가.

"다행한 것은 앞 버스 승객들에겐 버스 카드 제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다소 비좁긴 했지만 공짜 아닌가. 지갑을 가지러 다시 십오층까지 걸어올라가는 것도 끔찍했고 올라가면서 오층과 육층 사잉에 끼여 있는 남자의 발을 다시 봐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에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경비는 순찰 중이고 사람들은 핸드폰을 빌려 주지 않고 공중전화는 고장이고 경찰은 얼굴의 수염이 반만 있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란 말인가."

나는 이 장면에서 매우 웃었다. 수염을 절반만 깎은 주인공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상황이 딱하기도 했다. 두 버스의 승객이 하나에 탔으니 버스 안은 매우 비좁다. 한 남자의 손이 주인공을 가로질러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다. 그 바람에 주인공이 치한으로 오해받아 누명을 뒤집어 쓰고 버스에서 추방 당한다. 이제서야 이 단편이 주는 답답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던 게다. 왜 그 누명을 자기가 감당한단 말인가! 답답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도 재수없음의 연속이다. 회사에 도착한 주인공이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다. 주인공은 한 여사원과 함께 갇혀 버렸다.

주인공은 가까스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여자를 먼저 내보낸다. 그러는 와중에 옷은 걸레처럼 구겨지고 더렵혀진다. 여자가 관리인에게 신고를 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갇혔다는 것이 민망해서인지) 여자는 주인공을 위해 아무 일도 해 주지 않았다. 한참 후, 관리인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 주인공. 그제서야 옷이 더러워진 것을 발견하고 생각한다. '아 그렇다면 먼저 올라간 미스 정도 옷의 앞쪽이 이렇게 더러워져버렸겠구나. 그녀가 좀 측은해졌다. 나는 남자니까 괜찮지만 그 여자는 어쩌나.' 하고. 그리고, 관리인에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꺼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사무실에 갔더니 미스 리가 하는 말. "아니 정대리님. 하수도로 출근하셨나봐요? 거울 좀 보세요." 머리는 엉겨붙어 있고 면도는 반만 되어 있고, 어깨엔 여자의 하이힐 자국이 패였고, 양복은 기름으로 더러워져 있고 구두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 주인공은 중요한 회의에 있었고, 불쌍하게도 이런 차림으로 참석한다. 아, 가여워라! 회의가 끝난 후, 구두를 찾으러 1층 안내 데스크에 갔지만, 경비원들은 주인공을 잡상인으로 오해하고 회사 밖으로 들어낸다. 주인공을 구해 준 이는 동료인 한 대리. 주인공은 "한대리, 내가 점심살께"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한다. 거기에 잡상인으로 오해한 경비원들에게 대한 원망은 없다.

아직까지도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를 생각한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일 만큼 자신의 처지보다는 그 남자를 생각한다. 온갖 수모을 받고 고생을 당하면서도,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를 보내면서도 주인공은 그 남자를 계속 생각한다. 119에 신고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가로막히면서도 말이다. 주인공은 그 날 퇴근 길에서도 같은 아파트 사람들에게 묻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사람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인터폰으로 경비에게 묻는다. 하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 전화인 줄 알았던 경비는 "밑에 공고도 안 보고 다녀요?"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고 끊어버린다.

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단편은 이렇게 끝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 그 남자의 안녕이 궁금했다. 주인공의 상황이 잠시 답답하긴 했지만, 주인공을 향한 공감과 그 남자에 대한 안녕이 더 궁금했다. 전화로 들었던 말처럼, 주인공은 나를 닮았다. 아니, 나는 주인공과 매우 닮았다. 상황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대화를 보며 많이 놀랐다.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을 답답함보다는 크게 웃으며 짜릿한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에게 답답한 소설을 읽으며 내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주인공이 닮아서일까, 더 큰 공감이 되어서 웃은 것일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한 이유가 궁금하다.  

대단한 김영하(!)다. 독자는 김영하가 그려낸 다양한 캐릭터에서 자신을 만날 것이다. 물론 김영하의 소설에는 나와 전혀 다른 인물도 많이 등장한다. 김영하는 그저 행동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의 지형도까지 그려냈다. 엘리베이터의 주인공에게서 내가 전율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보고 전율할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주인공이 나의 마음과 매우 비슷하여 한껏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 화를 내지 않은 대목, 화를 내는 대신 감사의 마음을 전한 대목은 <엘리베이터>의 백미다. 그 대목에서 화를 냈다면, 나는 관심을 잃었을 것이다. 화를 내지 않음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는 '진짜'가 되었다.  주인공을 닮은 이들이라면, 모두 자신만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교대역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계단에 앉아 껌을 팔던 할머니의 안녕이, 선릉역 5번 출구 앞에서 더풋샵 광고지를 나눠주던 씩씩한 청년의 안부가, 동훈빌딩에 건강음료를 배달하는 젊은 여인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리고 김영하가 그려 낸 인물들의 높은 개연성과 정확한 서술에 감탄한다.

내 책을 읽은 어느 독자의 리뷰 첫 머리가 기억난다. "
이 책은 친절하면서도 정직하며 이름모를 독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가득차 있다." 혹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애정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한다면, 직접 대답하는 대신 이 책 <엘리베이터>를 소개하면 되겠다. 김영하 소설을 읽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유형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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