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도시 생활의 비인격성

카잔 2011. 3. 8. 16:47


식당 주인 아주머니께 돈을 건네 드리면서 "저는 얼마 전에 이 근처로 이사 왔어요. 아마 자주 올 듯 해요" 라고 말했다. 아 그래요? 어디서 왔어요. 서울이요. 서울 어디요? 역삼동에 살다 왔어요. 아! 저는 잠실에 살다가 얼마 전에 여기 (장사하러) 왔어요. 오! 그러세요? 그럼 댁은 잠실에 있으세요? 네, 근데 식당 위에도 숙소가 있어 여기서 먹고 자지요. 그럼 자제 분들은 모두 서울에 있구요? 그렇지요. 왠지 반가웠다. 그래서 말했다. 아! 반가워요.

아주머니는 출입문까지 나오며 나를 배웅했다. 이사 온 동네에서 처음으로 말을 주고 받은 분이 생겼다. 역삼동에 4년 반 동안 살면서 바로 옆집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보다 길었다. 현관문을 나와 한 두 걸음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역삼동 집 주변에는 매우 많은 식당이 있다. 테헤란로 이면 도로까지는 불과 1~2분 거리였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적은 없다. 심지어 동네 단골 미용실의 아주머니와도 4년차가 되면서 겨우 말을 나누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제도 갔던 식당이고 앞으로도 자주 뵐 것이라 생각해서 인사하는 게 어떠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서울에서의 유대 관계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동성이 높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또한 신영복 선생의 지적처럼,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비인격적인 관계를 강화시키는지도. 미국의 사회학자 루이스 워스(Louis Wirth)가 주장한 도시 생활의 비인격성과 사회적 거리감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몇 마디의 대화가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은 집을 지으며 생긴 것인지, 아직 가로등이 없다. 캄캄한 길을 가는데 찬바람이 휘익 불어왔다. 추위가 덜 느껴질 정도로 잠시 나눈 동네 주민과의 대화가 따뜻했다. 다세대 주택인 건물에는 나 외에도 3가구가 더 산다. 집 안 정리가 끝나면, 브라질에서 사 온 커피라도 하나씩 나눠 주며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삼동 집에서도 인사해야지, 하고 슬쩍 생각한 적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루이스 워스의 말처럼 도시에서는 사회적 거리감이 더욱 커지는 것일까? 분명, '나'라는 개인은 똑같은데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말이다. 상황이 주는 힘이 실재한다면, 시골 사람의 푸근한 인심은 그들의 개인적 특성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골 생활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은 영향력 덕분이기도 할 테니까. 그러니, 오늘 이런 행동을 한 나를 두고 저를 살가운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마시길! 여러분들도 시골에 사시면 그러하실지도 모르니까. ^^

그렇다고 해서, 시골에 오면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행동에는 바로 그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으니까. 그러니, 어떤 행동이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 환경에 의한 영향인지 따지는 것만으로도 보다 합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비인격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앤서니 기든스1)는 자신의 책에서 워스가 도시의 특성 중 비인격성을 다소 과장했다고 지적했다.

오늘 두 번의 식사를 하러 오가는 길에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대여섯 마리의 개들을 만났다. 녀석들! 나를 보면 미친 듯이 지저댄다.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지저대서 지나가기가 민망하고 짜증이 날 정도다. 저절로 '아! 개xx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는 아직 이방인이라는 뜻이리라. 내일은 개껌이라도 들고 가서, 녀석들에게 말을 걸어보아야겠다. 그런데 개껌은 어디서 구하지? 하하하.

1) 앤서니 기든스 :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제3의 길』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하는 새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함. 보보는 대학에서 그의 고전적 사회학 입문서인 『현대사회학(제3판)』으로 사회학에 입문했음. 입문만 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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