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지난 밤 꿈을 들여다보다

카잔 2011. 4. 20. 05:23

나는 한 여인과 길을 가고 있었다.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큰 저택인데, 저택으로 가기 위해서는 밀림을 통과해야 했다. 자연의 밀림은 아니었다. 사람 손으로 정돈된 3~4미터쯤 되는 높이의 나무들이 덩굴처럼 서로 얽혀 있었다. 길이 있었지만 미로처럼 이리 저리 갈래가 많았다. 거대한 미로와 같은 밀림에는 낮인데도 옅은 안개인지 연기인지 정체 모를 기운이 피어올라 으스스했다. 나는 뒷걸음질쳤다. 무서웠다.

"윤영아, 무섭다. 가지 말자." 하지만 그녀는 가야 한다고 말했다. 둘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 뒤에서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수가 흐르던 곳이었는데 물이 많아진 듯 했다. "원래 저렇게 물이 많았냐?" 그럴 걸요, 라는 소리에 안심을 했다. 잠시 후에 물흐르는 소리가 커졌다. 쏴아아. 분명 물이 많아지는 것이 신기했지만 정글 미로에 신경쓰느라 관심을 두지 못했다. 잠시 후, 하수로에서는 엄청난 물이 쏟아져 나와 내가 있던 공간을 모두 덮쳤다. 잠시 후, 나와 윤영은 하나의 묘비명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새벽에 꾸었던 꿈 이야기입니다. 생생했습니다. 여인의 이름은 윤화였고, 내가 아는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삶에 매우 강렬한 흔적을 남긴 두 번의 꿈을 꾼 이후로는 관심, 아니 두려움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꿈을 잊었고, 다른 하나의 꿈을 올해 초에 노트북을 잃어버린 꿈입니다. 이 꿈 이후, 열흘 후에 나는 실제로 하드데이터를 몽땅 잃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꿈은 너무나 생생하여 현실이라 착각할 정도였고, 며칠 후 꿈은 정말 현실이 되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잠재의식을 이해하려고 평생을 노력한 사회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만나는 4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사회가 들려주는 잔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므로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 우리의 자아가 들려주는 진정어린 호소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쓰는 '가면 자아'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더욱 품위 있게 처신하는 게 꿈 속의 자아다. 이게 바로 진짜 우리이다." 1)

프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꾸었던 저 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꿈은 은밀한 것이게 프롬은 자신의 저서에서 많은 꿈을 다루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하나도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인이 등장했으니 은밀한 욕망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런 것이라면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젊은 사내가 양평 시골에서 홀로 지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니까요.

그것보다 나는 겁이 납니다. 또 다시 내게 어떤 일이 닥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드네요. 평소 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름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처럼 신경쇠약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신경쇠약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하하하. 묘비명은 무슨 뜻이고, 갑자기 쏟아진 물은 무얼 의미할까요? 사실 나는 이 글을 적은 후에는 꿈을 잊고 살 것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일어나는 정도, 그리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 정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꿈을 진지하게 들여다 본 날입니다. 지난 노트북 잃어버린 꿈을 신이 나서 장난치듯 글을 썼다면, 오늘은 이게 뭘까, 하며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어 볼 마음은 없습니다. 그는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이룬 작가지만, 내게는 균형을 잃은 작가로 보입니다. (아직 그를 잘 몰라서 생긴 편견이겠지요.) 하지만 다소 조심스럽게 며칠을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신경쇠약이 맞는지도 모르겠군요. ^^

1)『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p.68, 에리히 프롬 전집 9권『Das Wesen der Träume』 재인용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youniqu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