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세상을 떠나는 위인들의 기대

카잔 2011. 12. 26. 12:14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학 교수가 세상에 던지는 아름다운 작별 인사였다. 책은 (죽음과 인생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넘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지혜로 가득했다. 그의 메시지에 감동하여, 당시 내가 책을 읽었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마지막 강의』 리뷰 http://www.yesmydream.net/289)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공헌'이 무엇인지, 그 공헌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 주었다. 말로 '가르치기' 보다는 삶으로 '보여' 주였다. 내게 스티브 잡스는 매우 실천적인 사람, 행동하는 사람이다. IT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의 두꺼운 자서전을 읽어보려는 까닭이다. 나도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랜디 포시는 2008년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병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했다.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모두 췌장암이었다. 췌장암이 새삼 얄미워지는 것은 방금 전에 본 기사 때문이다. <강영우 박사 "허락된 시간 많지 않아">라는 기사, 왠지 불길한 예감으로 클릭했다.

나는 7~8년 전, 박사님의 책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를 읽었다. 세세한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나, 감동과 울림을 받았던 기억은 선명하다. 이후로도, 줄곧 박사님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시각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박사님 삶의 행보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라, 어려움도 훌쩍 넘어서는 인격의 소유자였으리라.

기사는 박사님이 췌장암 진단을 받았음을 전해 주었다. 어느 정도 직감했지만, 놀랐던 것은 고작 "한달 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 때문이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 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 받아 감사하다"는 장문의 메일을 신문을 통해 지인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몇몇 유명 인사의 죽음 앞에 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더욱 오래 사셔서 인류에 공헌해 주었으면 하는)이고, 그리고 이내 나는 경건한 열망(공헌과 기쁨의 조화를 누리며 살고자 하는)을 품게 된다. 열망인데도 들뜸의 감정이 아니다. 언젠가 이루게 된 날을 상상하면서 흥분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늠하면서 차분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사할 때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5년 동안 살던 역삼동을 떠날 때, 그제서야 나는 선릉공원이 주는 청량함과 문명의 이기들, 그리고 편리한 교통 환경이 절실하게 고마웠다. 가까운 사람이나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에도 이런 감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느낌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만큼은 강력하지 않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일상적인 심정과 생각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삶을 사랑하기 위해 대재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니 오늘 저녁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라고 말하지만, 나는 죽음을 자기 삶에 진지하게 적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한다.

인간은 필멸성(必滅性)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불멸성을 믿으며 살아간다. 이런 깨달음을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며 배웠는데, 참 귀한 배움이다. 죽음이란 주제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힘에 대해 사색하고 싶다면, 파스칼의 잠언집도 좋지만,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이 좀 더 재밌고 읽기에도 수월할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사실은, 강영우 박사님의 갑작스러운 췌장암 소식이 아니다. 그런 소식이 언제라도 내게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살고 싶다. 나의 친구에게도 혹은 나의 가족에게도 말이다. 불안에 떠는 염세주의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필멸성을 믿는다는 것이 염세주의로 직결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이사를 떠나기 직전만이 아니라, 살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 이 곳'의 귀함을 누리고 싶고,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을 때' 뿐만 아니라 비교적 충분할 때에도 삶에 대한 열렬한 애착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강영우 박사님은 삶을 귀히 여기는 열정으로 평생을 사셨으리라. 일찍 깨닫고, 그 깨달음 대로 살려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유명한 분들의 죽음 소식을 듣지만, 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무명씨들이 자신의 생과 작별하는 것이 세상사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 나는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아쉬워할까? 죽음이란 단어 앞에 정직하게 서면, 내게 참으로 소중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있던 내 가치관과 꿈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면 나는 다짐하게 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을 갈무리하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랑을 나누고 도전하며 살자고. 위인들이라고 하여 죽음 앞에 마냥 의연하지만은 않겠지만, 인류를 사랑했다면 우리에게 이런 기대도 가질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자신을 추모하며 슬퍼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 헌신하여 세상에 공헌하기를.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나의 세계 속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헌을 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