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옷을 훌러덩 벗고 욕실에 뛰어든다. 몸을 담글 수 있는 커다란 욕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정말 '뛰어든다'. 샤워는 행복감을 준다. 따뜻함보다는 좀 더 뜨거운 물이 몸을 적시는 순간의 평온감도 좋고, 하룻동안 일하느라 경직된 어깨와 목이 이완되는 느낌도 좋다. 샤워 거품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는 청량감도 끝내준다.


20분이 훌쩍 지나갈 만큼, 샤워는 나의 시간을 참으로 쉽게 훔쳐간다. 알면서도 싫지 않다. 이것은 수지맞는 거래다. 내가 얻은 평온감과 몸의 이완 그리고 청량감을 생각하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샤워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거나 내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30분이 지날 때도 있고, 한 시간 동안 샤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나는 이 황홀한 일을 적당한 선에서 그만 두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샤워를 하면 손톱 밑이 불어터지기 때문이기도 하나, 더욱 중요한 답변은 내가 태어난 목적이 샤워나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매일 30분씩 샤워한다고 해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급격하게 부족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워 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내게 중요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로부터 황홀경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안내자 페트루스가 그의 여정을 도왔다. 영혼의 훈련이 익숙해질 무렵, 코엘료는 커다란 황홀경을 맛보았다. 『순례자』에는 그 날의 경험이 적혀 있다. "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훈련을 시도했다. 모든 것이 이제까지 하던 것처럼 진행되었다. 팔을 내뻗고 빛나는 태양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는. 그런데 거대한 태양이 내 앞에서 빛나는 순간에 이르자 난 커다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코엘료는 "그대로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바랐지만, 페트루스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훈련을 통해 황홀경에 빠진 코엘료를 칭찬하기는 커녕, 뺨을 때리며 말했다. "목표를 잊지 말아요!" 화난 목소리에 코엘료도 놀랐을 것이다. 이런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나요, 라고 묻자 페트루스가 답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죠. 특히 부분에 도취되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지만, 목표를 향하여 굳건하게 전진할 줄 모르는 나다. 좋은 점은 작은 것에서도 황홀경을 맛볼 줄 안다는 것이다. 샤워를 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재즈를 들으며 기쁨에 도취된다.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나에게 황홀경을 선사한다는 것이고, 너무나도 자주 그런 기쁨에 취하느라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들에게 주어야 할 시간을 과정에다 쏟아내버린다는 점이다.

시간을 덜 중요한 무엇인가(샤워, 음악)에 조금씩 떼어준다면, 더 중요한 일(가슴이 시키는 일)에 할애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나를 컨트롤하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모든 일에 시간을 충분히 쏟을 만큼 인생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를 잊은 황홀경에 빠졌다가 뺨을 맞은 코엘료는 내 모습이다. 내가 샤워 시간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 스스로 때리는 뺨인 셈이다.

당신이 만약, 일을 미루기 좋아하고,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업무에 임하는 임박착수형이고, 미리 계획한 대로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일단 뛰어들어 즉흥성과 융통성을 발휘하며 진행하는 스타일이라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어려움은 흥미로운 일과 관심을 끄는 일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해야 하는 일을 놓치거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할애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한 규율과 그것을 지켜내는 인격이다. 인격이란, 계획을 수립할 때의 감동이 모두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실천해가는 힘을 말한다. 나는 규율을 세웠다. 하루 반드시 2시간은 글을 쓰겠다고. 이것은 나의 궁극적인 목표에 연결되는 일이다. 자신의 꿈으로 향하는 규율을 세우고 스스로 실천해 갈 수 있다면 그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황홀경에 목표 실현이 더해질 테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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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미양 2012.01.05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홀경을 위한 훈련은 주객의 전도, 눈가리고 아옹일테지요.
    전심으로 나아갈 때 자연스레 피어오를 진실된 감동과 황홀.
    고것을 기분좋게 생각해 봅니다.

  2. 훌륭하게 살아남기 2012.01.06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박착수형.
    임박도피형..
    임박포기형...
    이대로 가면 이대로간다..정말.

    올해는 어림없어! 2012년은 내꺼야. 2012년도여 나를 따르라~~!

  3. 여원재 2012.01.08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TI가 생각나는군요.
    거기에 무엇으로 결정하는가라는 것에
    판단과 인식에 대한 구분이 나오더라구요.
    저도 이 임박형입니다만..
    기간 내내 설렁 설렁 하다가 막판에 올인을 하느라
    고생좀 하는 편입니다.

    임박착수형은 자기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는 說이 있더라구요.
    미루다가 막판에 임박해서야 기능이 발휘된다는 ㅋㅋㅋ
    아마 그 말이 믿을만 할 겁니다.
    왜냐하면 막판까지 무언가 믿을데가 있으니까 미루는 것이 다반사.
    더구나 막판이 되면 그 스피드가 휙휙 잘 이루어집니다.
    보통때는 택도 없는 에너지가 막 생긴다는..

    그건 결정의 방법을 어느 방향에서 택하느냐는 것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인식형인 저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중간 점검하는 것이 유리하더라구요.

    • 보보 2012.01.09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MBTI가 생각나셨다면, 정확하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지식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저도 막판에 올인하는 그 힘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도 체험했으니까요.
      저는 그 위력을 막판이 아닌, 중간에 발휘하고 나면
      스트레스나 위기감이 아닌 여유까지 획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훈련 중입니다. ^^

  4. faith 2012.01.1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힘 받고 갑니다...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