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살 날이 일년 밖에 안 남았다면

카잔 2012. 2. 6. 23:03

1.
"살 날이 일년 밖에 안 남았다면 뭐할 겁니까?"
"죽어라고 글 쓸 거야. 내 안엔 책이 죽 들어있거든. 그리고 난 내 안에 아직 그 책들이 두어 권 남아있는 채로 죽고 싶진 않아."
- Derrick Jensen, 철학자이자 작가.

내 안에도 책이 여러 권 있다. 지난 해, 하드디스크가 통째로 사라져 내 안의 책 9권을 몽땅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 두 권은 탈고 직전의 원고였다. 나는 울었고 많이 괴로워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일년이란 시간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또 다시 하염없이 일년을 보낼 순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했다.  

2.
죽어라고 쓰지는 못할 것이다. 며칠 후면 내 집중력이 흩어져 버리거나 다른 일로 산만해질 가능성이 높다. 적은 내부에 있는 셈이다 : 산만함과 지나친 호기심. 나는 나를 넘어서고 싶다. 필요하다면, 내 머리를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싶다. 미래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3.
율곡 이이 선생은 진사 초시에 장원급제했다. 13세 때의 일이다. 이후 아홉 번이나 대소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유명했다. 선생이 42세 되던 해, 배우기를 청하러 온 이들에게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한편,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아무런 방향을 알지 못할까 염려되어 한 권의 책을 썼다. 『격몽요결』의 집필 동기다. 

책은 입지(立志)장으로 시작된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뜻부터 세워야 한다. 그리해서 자기도 성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물러서려는 생각은 조금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1월의 어느 주말에 뜻을 세우는 글을 썼다. 파일 제목에 입지선언문이라 해 두었다. 율곡 선생의 한탄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은 성인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
“진실로 몸소 실천하면서 사는 동안에 물든 옛 습관을 버리고 타고난 본래의 성품을 회복한다면 여기에 터럭만큼도 보태지 않아도 만 가지의 착한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성인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가?” 나는 작가가 되기로, 이왕이면 착한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성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뜻이 바로 서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치 못하고,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뜻을 세우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동을 착실하게 하는 일들은 모두 자신에게 달린 일이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겠는가?" 슬그머니 책망하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힘을 주는 선생의 말씀이 반갑다. 힘찬 격려 같다.

4.
어제, 강연 의뢰 하나를 사양했다. 강연하기를 좋아하지만, 요즘엔 강연을 적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떠올려 주어 연락해 준 이의 강연의뢰를 사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선 그에게 미안한 일이다. 또한 눈 앞의 수입이 주는 유혹에 눈을 감아야 하고, 잠시 동안의 사양이 영원한 거절로 받아들여질까 봐 겁도 난다. 일 이년 후면 다시 강연을 많이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5.
큰 소득원까지 줄이려는 까닭은 공부하고 싶어서다.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다. 물론 강연을 하는 일도 좋은 공부였다. 1천 회 남짓 강연을 하면서 많은 공부를 했으니 이젠 1천권의 책을 읽는 공부를 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2/3 정도 진행된 1년짜리 유니컨 과정도 남은 수업료를 돌려주며 중단하고, 와우스토리 수업도 일 이년 쉬고 싶을 정도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인지 혹은 내 완벽주의 성향에서 기인한 '뭔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집착 때문인지 몰라 머뭇거렸다. 확신이 없는 경우라면 극단이 아닌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히 결정해 두었다. 유니컨은 2기까지만 하리라고.

6.
얼마 동안은 공부에 몰입하고 싶다. 책읽기 자체도 맘껏 즐기고 독서의 유익도 한껏 얻고 싶다. 공부와 명상을 수행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깨끗하고 고운 마음씨, 균형 있고 깊이 있는 지성, 흔들리지 않되 열려 있는 철학, 타인과 세상을 향한 따뜻함,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의지다.

7.
이 글을 쓰는 아침에도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강연 의뢰가 이렇게 매일 들어오는 편이 아닌데, 하늘이 나의 결심이 얼마나 굳은지 실험이라도 하는 듯 하다. 강연 의뢰를 받아들일 때에는 그저 전화 한 통화지만, 강연일이 다가오면서 교재 송부, 강의안 작성 등의 업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며 사양했다.

바쁘게 살다가 그 바쁨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적어도 한 달 이전부터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야 한다. 중요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약속 잡는 일을 줄이고, 이것저것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3~4주를 살아야 며칠 간의 조용한 시간을 마련할 수가 있다. 휴식과 여유는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외판원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이런 저런 약속을 하거나 하나 둘 일을 벌이는 것은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다. 약속할 때 혹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탁구공 만한 작은 일이었지만, 그런 탁구공이 여럿 모여 시간을 할애할 일이 자꾸 많아진다. 때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눈덩이가 될 만한 일을 경계하고 있는 중이다. 단지, 책과 벗하기 위하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