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지나온 과정 자체가 선물인 삶

카잔 2012. 1. 26. 09:49

잊지 못할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나를 잊었을 테지만, 나는 그를 기억한다. 지금은 비록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0년이 지나도 기억할 것 같은 그 만남은 불과 5분 만에 끝났다. 서로 말을 섞은 것도 한 두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의견이나 생각을 주고 받은 게 아닌 진부한 대화였다.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와 같은 말들.

나는 2년 전에 마음이 맞는 친구 넷과 함께 창업을 했었다. 우리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세우고 전략을 상의하기 위해 워크숍을 떠났다. 떠난 게 아니라 묵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장소가 JW메리어트 호텔이었으니까. 그를 만난 것은 워크숍 날 밤이었다. 우리에겐 참으로 의미 있는 그날, 축하해 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

그는 함께 창업한 친구의 지인이었다. 그는 명성있는 소믈리에였다. 
소믈리에를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축하해 주기 위해 와인과 과일을 직접 들고 나타난 그. 유명한 소믈리에라는 친구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나는 그의 정성어린 태도와 웃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꼈다. 그와의 만남이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명함과 함께 건넨 말 때문이다.

"제가 다른 것은 거의 모르지만, 호텔과 와인은 조금 압니다.
와인이나 호텔에 대해 궁금할 때 제게 연락 주세요."


평범한 말이었는데, 감동이 느껴졌다. 호텔과 와인은 좀 압니다라는 말 속에 자부심이 담겨 있는 듯 했고 당당한 태도가 겸손하면서도 편안했다. 그의 명함 속 이메일 주소에도 호텔사랑이 담겨 있었다. 4hotel 이란 대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의 만남에서 든 생각은 이렇다.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그가 참 멋있다.'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나에게도, 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다. 나는 독서를 할 때에도 남독, 다시 말해 하나의 분야에 푹 젖지 못한 채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왔고, 공부를 할 때에도 진득하게 한 분야를 파고 들지 못했다. 잡다하게 알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와의 비교에서 오는 자괴감이나 질투심은 없었다. 그의 명성도 부럽진 않았다. (제발 좀 나도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악바리같이 공부해 보고 싶은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이런 몹쓸 낙관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 전체로 내게 말해 주는 것이 있었다. 한 분야에 흠뻑 젖어들어 보라고 권하는 듯 했다. 마치 질투와 부러움을 못 느끼는 나를 위한 배려 같았다.

오늘 그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그는 국가대표 소믈리에였다. 듣기 좋은 비유가 아니라,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하여 한국인 최초로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한 소믈리에 중의 소믈리에였다. 와인에 대하여 정말 제대로 '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관련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5020

명실상부한 사람이었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실력에 기반한 품위 있는 자부심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러니 나의 찬사는 실력과 이름의 조화를 향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게 없는 것을 가졌기에 감동한 것이리라. 나는 작가도 아니고, 기업교육 강사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니까. ^^

그의 명성이 부럽진 않지만, 한 길을 진득하게 걸어온 열정과 노력은 부럽다. 돌이켜보니 나는 자기 길에 매진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박완서 작가는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에 연사로 서신 적이 있다. 선생은 강연의 첫 말을 이렇게 열었다. "소설 쓰는 박완서입니다." '소설 쓰는'이란 말로만 설명해도 충분한 선생의 삶이 무척이나 부럽다.

나를 소개하려면 여러 말이 필요한데, 박완서 선생이나 그는 한 문장이면 족하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야 할 또 다른 곳을 갈망하는 게다. 지금까지의 삶은 '자유'로 일궈왔다. 내가 원하는 일에 마음껏 시간을 주다 보니, 그 일이 나의 직업이 되었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훈련'은 필수품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꿈꾸는 삶은 '자유'가 아닌 '훈련'으로 다져가야 이뤄낼 수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호기심과 다방면에 걸친 열정을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집중해야 하니까. 타고난 기질을 대체하거나 바꾸겠다는 말은 아니다. 타고난 기질만으로는 결여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훈련으로 보완하겠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자율을 줄 것인지, 훈련을 줄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도 시기마다 다르다. 자율을 주어야 할 때 훈련을 주거나, 훈련을 주어야 할 때 자율을 주면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자기경영에 실패하는 주요한 이유는 훈련과 자율을 줄 때를 거꾸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신께는 지금 자율이 필요한가? 훈련이 필요한가?

성실한 사람들은 대개 자율을 주어야 해결되는 문제에서도 성실을 더욱 발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성실함을 발휘해야 할 때에도 자신에게 자유가 없어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오인한다. 나에게는 지금 성실과 훈련이 필요하다. 머지 않은 날에, 201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처럼 말하고 싶다.

"저는 한 편의 소설을 시작했고, 계속했고, 완성했습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쓰지 못해 괴로웠고 쓰는 동안 두려웠고 쓰고 나서는 잠시 행복했습니다." 김영하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었다. 시작했으면 완성할 때까지 계속해야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나도 삶으로 보여 주고 싶다. 하나의 결과물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게 싫어 내 소개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그냥 물러나곤 했다. 앞으로는 달라지고 싶다. 매년 하나의 결과물로 나를 소개하고 싶다. 깊이 젖어든 주제 말고는 다른 것에는 바보가 되어 버리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는 정민 교수님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쓰고서 머리말에 쓴 것처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안식년의 절반 이상을 오롯이 다산을 위해 바쳤다. 작업을 시작한 뒤로는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흥미가 없었다. 매일 하던 운동도 붓글씨 연습도 시들해졌다. 길을 가면서도 다산만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도 다산만 떠올렸다." 쓰기 시작하여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스스로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게 하려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