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많이 울었다. 오늘처럼 운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침대에 엎드려 울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집에 있는 게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집을 나서고 싶었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봄 오후에 내리는 가랑비였다. 소년의 마음은 가는 빗줄기처럼 약해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약해지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년은 곧 다른 생각을 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친한 사람들은 소년을 두고,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 소년은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소년의 외할머니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힘겨워도 내색하지 않는 소년을 섭섭해 했었다. 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소년이 자신과 친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이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시해서도 아니고, 자신을 열어보이다간 상처 받기 십상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힘겨움에 대한 소년의 침묵은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이후에 생겨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타고난 성정인지, 상처를 통해 얻은 습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한 점은 어머니가 그의 친밀한 대화 상대였다는 사실이다. 소년은 어머니를 잃었을 때, 가장 편안한 대화 상대와 힘들때 칭얼거릴 수 있는 대상을 함께 잃은 것이다. 그는 인생이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겨운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힘겨움을 홀로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픈 것이 아님을, 소년은 힘겨움을 체험하면서 배웠다. 그의 삶은 엄살을 부리지 않고서도 견뎌내는 법과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 힘겨움을 넘어서는 법을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서글프기도 했지만, 아픔 속에서 건져 올린 배움들은 그 가치와 유익이 크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었고, 고통은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누구나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소년에게는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다가오지 않은 이별을 미리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머지 않아 할머니와도 이별할 것이라는 생각에 슬프고 두려웠지만, 두려움에 당하고 있기보다 할머니와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어머니 묘소에 가는 등 의미 있는 일들을 했다. 소년은 큰 꿈도 가졌다. 희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종종 인생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신에게, 인생에게, 책에게 물었다.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답변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물음이 끝난 적은 없었다. 답은 '단번'이 아니라 '평생' 동안 찾아가는 것이고, 답을 찾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회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인생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소년은 스스로 답변하기도 했다. 인생은 감성이 풍부한 여성 같다고. 따뜻한 친절과 큰 호의를 베풀기도 하지만, 차갑고 까다롭게 굴기도 하는 여성.


남자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듯 인생과 결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소년은 믿었다. 소년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마저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떠나버렸다. 그런 자신의 인생과 힘겨루기를 할 때마다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야'라고 느꼈던 것이다. 소년은 생각했다. 인생이 마치 여인의 조울증처럼 부침이 심하더라도 모든 일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도 배울 수 있다고. 자기 인생과 화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소년은 울음을 그쳤지만, 하늘은 계속 울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가던 행인이 소년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잠깐씩 쳐다볼 뿐이야. 오직 나만이 내 삶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 오랫동안.' 하늘의 비를 맞으며 소년은 생각을 이어갔다. '나에게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해. 나처럼 나를 오랫동안 바라봐 줄 단 한 사람이.' 누구나 자신을 이해하고 아껴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에 대단한 힘을 얻을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해가 저물어 쌀쌀해졌다.


소년은 자신에게는 그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자신의 눈물을 마음 아파해 줄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몇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소년에게 전화는 어색한 대화 수단이었다. 전화번호를 누르는 대신 마음으로 그들의 축복을 빌었다. 축복은 진심이었다. 소년은 늘 이런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홀로 있을 때에도 외롭지 않은 것은 나의 영혼이 강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일꺼야.'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모조리 알아 줄 사람을 찾으려던 마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기대였다.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려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소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서가 아니라,그저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존재다. 소년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하러 갔다. 머릿 속의 생각은 정리되었지만, 해야 할 일들은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하니 식사는 필요한 것이었다. 먹고 싶지 않을 때에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