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프란츠 카프카의 말.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정말 그래야만 한다.
인생은 짧고 명저는 많으니까.
자신의 삶이 매혹적인 것들로 가득차기를 바란다면
카프카의 말에서 '책' 대신 다른 것들을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은 도끼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영화를 본다면, 그 영화 역시 도끼여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하고,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 도처에는 멋진 일들이 널렸고,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이니까.

2.
1957년, 단 한 표 차이로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넘겨 준 니코스 카잔차키스.
2010년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그의 묘지 앞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그의 묘비에 쓰인 글은 자유를 숭상하는 이들에게는 비전이 될 만한 멋진 경구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가 한 말 중에는 내가 묘비명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도 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책을 경시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책으로 보낸 세월조차 없었을 테니까.
저 말은, 책만큼 멋진 것들이 세상에 널려 있음을 발견하고서
독서에 치우쳐 왔던 날들을 아쉬워하는 것이리라.

3.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남자나, 꽃이 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모든 것에 감탄할 줄 아는 조르바.
감탄할 만한 것들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꽃들에게, 길위에도 있었다.
조르바를 만난 소설 속의 주인공은 변해갔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4.
행복은 영적인 것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정신적인 가치만을 숭배하는 이들은
물질적인 가치만을 숭배하는 이들만큼이나 편협하다.

조르바는 말했다.
"백 살이 되어도 뒷주머니에는 거울을 넣고 다닐 것이고
암컷이란 것의 꽁무니를 쫓아다닐 겁니다."


강연장에 올라갈 때 거울을 보지 않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대문 같은 내 앞니 사이에 고추가루를 끼워서 올라서기도 했고,
정체 모를 여인의 긴 머릿칼을 이마 옆짝에 붙여서 강연한 적도 있다.
웃긴 일이라 즐거웠다. 하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외모를 가꾸는 데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감을 잊고 지낸 것 같아서.

5.
아내가 있다면 암컷의 꽁무니를 쫓아다녀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 든 아내는 무섭다.
욕망을 어리석은 쪽으로 분출해서도 안 될 일이다.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보라.)
하지만 세상에는 부정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단박에 추락하는 이들도 많다.
감각적인 것들을 즐길 줄 알면서 부정한 일들에 빠지지 않는 것! 멋진 일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얻는 즐거움을 놓치기도 아깝다. 
많은 현자들이 그 즐거움을 맛보았기에 창조적이고 행복한 고독을 즐겼다.
월든에서 소로우가 그랬고, 강원도 오두막에서 법정 스님이 그랬다.

물질과 정신 모두에서, 독서와 삶 모두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
도끼 같은 책을 읽으며 인식의 세계를 확장하거나 낡은 인식을 깨뜨리고
의미나 배움이 없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도 진정으로 살아가는 일. 
깊어지면... 멀리 나아가면... 균형 위에 서게 되면... 가능해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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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하뜻 2012.03.13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과 6펜스>를 읽는 친구보다 <철학 이야기>를 읽는 내가 더 고상하다고,
    그리 여겼던 날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일입니다. 창피해요. 그랬다는 게요.

    지금의 내 모습을 훗날 돌아봤을 때, 창피할 게 있으려나요.
    덜 후회하며 덜 얼굴 붉히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어요.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여러 분야의 책이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제껏 자기계발서와 일부 철학책에만 귀 기울여 왔던 것 같습니다.

    문학이 주는 울림과 교훈을 모른 채 살아왔지만
    전부를 다 아는 것처럼 뻐겼던 날들이 떠오르네요.
    여전히 멀었구나. 스스로 되뇌입니다.
    "매혹적인 조르바"란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져 몇 자 적습니다.
    예전같았으면 조르바가 누군지, 그가 왜 매혹적일 수 있는지도 몰랐겠지요.

    • 하뜻 2012.03.13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리노란 분이 보보이기도 하고,
      보보가 리노이기도 하고,
      이 두 분 다 이희석님이란 걸
      아시려나...... ㅎㅎㅎ

      (조금 다른 성격이었지만)
      문학의 힘을 체험한 책으로는
      <깡 마른 마야>가 처음입니다.
      독서치료 공부할 때 읽었던 단편소설인데
      그 때, 소설이 주는 힘을 처음 맛보았더랬지요.

    • 보보 2012.03.13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뜻님께 문학의 힘을 보여준 책은... (제 기억으로는)
      『오빠가 돌아왔다』,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었지요.
      그리고 그 책을 추천해 준 이는 리노라는 사람이었구요. ^^ (갑자기 왠 생색?)

      도서관에 가는 길에 김애란의 책이 있으면 빌려오시기 바랍니다.
      이 젊은 작가 또한 '글빨'이 하늘을 찌른답니다. ^^

    • 보보 2012.03.13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처음엔 다른 책이 있었군요. ^^
      그렇다면, 제가 말한 두 권의 책은 낭만적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 준 정도는 될까요?

    • 하뜻 2012.03.13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구, 저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 해주셨네요. ^ ^
      예 맞습니다. 리노보보이희석님께서 추천해주신 두 권의 소설은
      현실의 음험한 영역도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었어요.
      <깡 마른 마야>는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통찰을
      체험케 해준 책이었구요.

      말씀해주신대로 김애란과 김영하의 책을 빌리려 도서관에 갔는데,
      없더군요. (사실, 미리 검색하고 간거였지만)
      김애란 소설은 모두 대여중이고
      김영하 소설은 아예 구비되어 있지 않았답니다.
      제가 원하는 책만 없었어요.
      쓰린 마음 안고... 독서통장 개설해서 돌아왔습니다. ㅎㅎ
      흐뭇.흐뭇.

    • 보보 2012.03.14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 도서관에 가실 때를 대비하여
      좀 더 많은 목록의 책을 추천 드려야겠군요.

      여전히 김애란의 책들. ^^
      정유정의 『7년의 밤』: 놀라운 스케일.
      박민규의 『카스테라』 : 문체, 소재, 주제 모두 파격적이죠. ^^

      그리고 술술 읽히면서 생각할 꺼리 가득한 두 권의 책.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폴 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3. 2015.08.15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보 2015.08.18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읽으며 카프카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망치가 되는 글이라면 저로선 기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