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부터 새롭게 시작할 세미나 <독서대학 : 세계문학편>의 수업료를 두고 고민했었다. 진행자인 나도 배우는 점이 있을 테고 참가자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렴하게 가자는 원칙만 세워 둔 정도였다. 자기계발 시장의 높은 가격대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 가격을 염두에 두고 생각 중이었다. (합리적인 기준이란 것도 주관적이긴 할 것이다.) 30만원, 25만원, 20만원 이렇게 세 가지의 옵션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혜민 스님의 글로써 고민을 종결하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내가 약간 손해 보면서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십시오.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잘 기억하지만
남들이 나에게 해준 것은 쉽게 잊기 때문에,
내가 약간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
알고 보면 얼추 비슷하게 사는 것입니다."
-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p.56

2.
'7명, 소수의 인원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30만원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혜민 스님의 말로 나를 설득했다. 멋진 말에 순간적으로 감동한 것이라면, 감동이 사라진 후에는 후회할지도 모른다. 결정에 기여한 것은 감동만이 아니다. 약간의 손해를 보면서 살 때 비로소 주고 받는 것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평소의 내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니 결정, 20만원!

3.
결혼을 앞둔 후배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비는 '당연히' 내가 낼 생각이었다.무엇 때문에 내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선배여서?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둘 다 이유일 것이고, 몇 가지의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만나 백화점 식당가로 갔다. 나는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골랐고, 그는 나보다 비싼 메뉴를 골랐다. 함께 먹었기에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시고 일어날 때, 그가 말했다. "제가 낼께요." "아냐, 내가 낼께." 나는 얼른 계산서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점심 식사 치고는 비싸게 나왔다.
3만 7천 5백원을 계산하며, 
아주 잠깐동안 '내가 안 내도 되는 건가?'를 생각했지만, 이내 '조금씩 손해 보며 살자'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 생각은 맞는(right) 걸까?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테지. 배려와 도덕은 지켜지면 좋은 것이지만, 세상에는 그것 외에도 멋진 가치들이 많고(창의와 즐거움 등), 배려와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비도덕이고 배려하지 못함이다. 

다행하게도, 내가 비싼 돈을 내면서도 괴롭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 "조금씩 손해 보며 살자"는 생각이 내게는 그럭저럭 맞는(fit) 셈이다. (손해를 보며 괴로워지는 상황이라면,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4.
손해 보며 사는 삶의 은근한 동기는,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획득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략적으로 손해를 선택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평판의 획득이 아니라, 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궁리한 결과로 손해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겉으로 드러나는 '베풂'의 모양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분될까?

아마도 끝이 다를 것이다. '전략적 선택'의 끝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은 이득일 것'이라 생각하며 부분적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일말의 아쉬움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손해 보는 것이 결국 주고받음의 균형을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선택'의 끝은 평온함이다. 자신의 내적 가치를 추구할 때마다 온전함에 가까워지고, 그 때마다 느껴지는 평온함 말이다.

5.
매번 나의 손해가 전략적인 술책인지, 합리적인 순수함인지 따져볼 필요는 없다.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우리가 어느 하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사람과 순수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 두 가지 모습이 모두 들어 있을 테니까. 둘을 구분하려는 노력보다 합리적인 순수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 속엔 항상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 한 마리는 이기적인 욕심과 두려움이 가득하고, 한 마리는 따뜻한 의지를 지녔고 선하다. 어떤 늑대가 이길까? 우리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6.
이기적인 본성을 지닌 우리가 손해를 보며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손해를 보며 사는 일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정 수준까지 돈과 행복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오피스텔은 비싼 임대료에 걸맞게 시설이 좋다. 주방에는 전화와 라디오가 내장되어 있는데, 나는 이 작은 편의시설 하나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심리학의 통찰을 경제학으로 흡수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네만 교수는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에서 연봉이 9만 달러 이상인 사람이 2만 달러 미만인 사람에 비해 두 배 이상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연봉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9만 달러를 버는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돈이 많아진다고 행복이 마냥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감이 떨어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행복에 큰 도움을 주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돈이 행복에 주는 영향력은 극도로 미약해진다. 행복에 관한 카네만의 연구 결과는 손해 보는 삶의 한계와 필요성을 모두 이해하게 한다.

한계는 손해 보느라 자기 삶을 지켜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일정 수준의 수입을 지켜내지 못하면서도 손해 보는 삶을 지향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면, 수입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을 위해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그 때도 손해 안 보려고 바득바득 살아갈 필요는 없다.

7.
손해 보며 사는 삶을 추구하든, 또 다른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그것은 이차 문제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수입의 확대 말고도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의미가 되는 삶 말이다. 이기적인 본성 대신 선한 의지를 발휘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본래 내 마음에는 선함이 없었다. 선한 행동이 쌓여가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리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