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내 삶에 '자유와 여유'를 조각하고 싶은 욕망. 이것은 서로 다른 욕망이다. 욕망의 모양과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배타적이다. 하나의 추구가 다른 하나를 방해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생산적인 삶과 자유로운 삶을 모두 구현하고 싶다. 다시 말해, 성공을 거머쥐고 싶고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다행하게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탁월하게 해 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은 세상이 나의 재능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욕심과 조바심이 탄생한다. 어서 빨리 무언가를 해내어 인정받아야 한다는 서두름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노트북 앞으로 몰아간다.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래야 실력도 쌓여가고 돈도 벌 테니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치열하게 산다. 아니 매일을 그렇게 산다. 욕심과 조바심의 긍정적인 효과다. 나의 딜레마는, 나의 성공 욕구를 스스로 제어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는 하루'가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내가 꿈꾸는 낭만적인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성공이 나의 행복을 전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일에 몰입하며 무언가를 성취할 때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성공을 향한 욕망에 고삐를 채우지 못하면 종종 내 삶을 일로만 채우게 된다. 그 때 나는 불만과 피로감이 쌓여 행복하지 않다. 기쁨이든 불만이든 감정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들쑥날쑥 하긴 해도 감정은 솔직하다. 그러니 행복에 관한 지혜를 찾으려면 세상을 떠도는 엉터리 관념을 믿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좋다.

 

행복과 성공이 서로 상관없다는 말은 엉터리다. 성공의 측정 기준으로 돈, 명예, 지위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돈을 대표적인 기준으로 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일정 수준까지 행복과 성공은 연관이 많다고.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행복 연구 결과를 보자. 연봉이 9만 달러 이상인 사람( 1)연봉이 2만 달러 미만인 사람( 2 3백만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봉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9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 간에 행복의 차이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성공이 행복을 보장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요컨대, 성공은 어느 수준까지는 행복을 돕는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성공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일을 할 때 느꼈던 기쁨과 지나치게 많은 일을 했을 때의 불만과 일치한다. 진솔하게 감정을 살펴보라고 한 까닭이다.

 

행복과 성공을 모두 만끽하고 싶다면, 행복과 성공으로 이르는 길이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성공하려면 한 곳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야 한다. 오직 앞만 보며 부지런히 힘을 내야 한다. 객관적인 기준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공에 이르면 달콤한 결실이 주어진다. 세상의 일부로부터 박수갈채와 스포트라이트도 받는다. 힘써 추구할 만한 멋진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행복이 없을 수도 있다. 성공만 추구해서는 내가 행복의 3대 요소라고 부르는 건강, 관계, 의미를 얻을 수 없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나오는 호랑 애벌레 이야기는 행복에 관한 한 성공은 허풍쟁이임을 보여준다.

 

호랑 애벌레는 열심히 기둥을 올랐다. 이제 곧 기둥의 정상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여기엔 아무것도 없잖아.” 다른 목소리가 꾸짖듯 대답했다. “조용히 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 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 호랑 애벌레는 깨닫는다. 아래에서 우러러보았던 정상은 화려할 뿐 행복을 주는 곳은 아님을. 그리고 자신이 올랐던 기둥이 유일한 기둥도 아님을. 수백만 애벌레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꼭대기까지 오르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묘사한 점은 아쉽지만, 이야기는 행복에 관한 통찰을 준다. 애벌레들은 수천 개의 기둥 중의 하나에 올랐을 뿐이고, 아마도 어떤 애벌레들은 다른 기둥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후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둥에 오른다고 해서 후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다른 사람들을 따른 것이거나 남들이 좋다고 추천한 기둥이라면 말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기둥을 선택하여 올라야만 후회가 줄어들 것이다. 결국 자신의 직관과 감정에 따라 행복의 기둥을 선정해야 한다.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성공에의 여정과는 다르다. 성공이 속도와 집중을 요구한다면 행복은 균형과 여유를 요구한다. 삶의 다양한 역할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쉼과 교제를 위해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 행복을 연구한 학자들은,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친구들과 식사하기, 성관계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일상을 음미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작은 봉사를 행하는 것 역시 행복을 부른다. 이러한 일들은 속도를 늦출 때, 더욱 잘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성공과의 긴장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꿈꾸지만, 이 꿈을 방해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꿈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꿈 말이다. 어서 책을 써서 나의 학생들에게 모델이 되고 싶고,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들이 나의 자유와 여유를 앗아간다. 행복의 장애물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행복에 누릴 수 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휘두르는 칼은 애꿎은 수고와 상처를 남길 뿐이다. 물론 행복과 성공을 방해하는 외부 훼방꾼도 많다. 하지만, 나는 먼저 내부의 적을 다스린 후에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다. 불평하든 개선하든, 그것은 그때의 일이다.

 

성공과 행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면, 선택이 아니라 동시 추격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말라는 속담은 한 마리만 잡아도 배부른 경우에 적용해야 할 말이다. 성공과 행복의 조화를 이룬다면, 많이 가질수록 좋다.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 일상적 행복을 포기한 채 어떤 일에 헌신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의식을 갖거나 탈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일상의 행복을 밀쳐 둔 헌신'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나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하나는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비즈니스맨의 이미지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성, 효과성, 탁월한 성과, 모던한 감각, 현명한 성실 등이 떠오르기를. 이를 위해 전문성을 연마하고 내 일에 몰입하리라.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이미지다. 여유, 자유, 낭만, 행복이 내 삶에 가득하기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즈음은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 느긋하게 풍류를 즐기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커피와 독서를 즐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라마크리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