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곳?

카잔 2012. 8. 7. 13:06

 

1.

난 언제나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늘은 영종도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부름에 응했다. 두 시간 후에 나는 인천공항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처럼 단박에 응답하는 일은 드물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폰 리퍼를 받아야 하고, 조르바 원고를 보내는 날인데... 게다가 저녁에 있는 약속은 어쩌지?


내일 해도 되는 일들은 내일로 미루고, 원고는 영종도 카페에서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저녁 약속은 양해를 구했다. 약속을 내가 먼저 미루는 일은 드물다. 그것이 싫어 약속을 정할 때에 보수적이고 신중히 잡으려고 노력한다.

 

2.

몇 가지 장애를 넘어, 나는 지금 영종도에 왔다. 인천공항에서 재밌게 놀아 봐야지, 하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품어 왔었는데, 오늘에서야 잉태해낸 것이다. 이곳에 오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훌쩍 '떠남'만이 필요했을 뿐.

 

떠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나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던 합리적인 이유들의 대부분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십대 중반부터 이 말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훌쩍 떠나려고 노력해 왔다.

 

약간의 돈이 필요하긴 했다. 차를 몰고왔으니, 왕복 톨게이트 비용(15,000원)과 기름값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곳에서 잠실에서는 80km의 거리다. 이는 서울과 춘천 간의 거리이니 나들이 수준은 아닌 게다.


멋진 카페에라도 들르려면, 분위기값이 더해진 차값을 내야 한다.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좋아한다. 멋진 풍광이 보이는 넓은 차창을 가진 카페라면 더욱 좋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니, 비싼 비용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편이다. 


3.

인천공항 주차장, 홀로 운전석에 앉아서 잠시 생각했다. 인천공항에서 놀 것인가? 아니면 영종도의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갈 것인가? 행복한 고민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소원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나의 옵션만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권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결정을 회피하면 자유를 만끽할 수 없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지 모를 때 역시 자유의 기쁨도 달아난다. 이런 경우라면 선택의 고민에 빠질 뿐이다. 남들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해도 정작 본인은 괴로운 고민.

 

요컨대, 자유를 누리려면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하게도 내게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카페를 원했다. 물론 공항 내에도 카페는 있다. 하지만 깔끔하고 정돈된 카페일 뿐, 내가 원하는 멋진 자연 풍광을 가진 카페는 아니다. 

 

오늘은 차를 몰고 왔으니 기동성의 잇점을 살려 영종도내 바닷가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인천공항에서의 놀이는 훗날에 공항전철로 와서 즐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는 을왕리 해수욕장의 우측 언덕에 있는 '골든스카이 호텔 & 리조트'로 향했다.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

 

4.

골든스카이 리조트는 을왕리 해수욕장과 왕산 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서해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리조트다. 나는 라운지에 앉아 한 두 가지 업무를 했다. 멋진 풍광을 슬쩍 곁눈질 해 가면서.


로비는 고급스러웠다. 앤저리너스 커피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롯데 계열인가 생각했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다. 나, 호텔에서는 주눅 드는 남자다. 하지만, 오늘은 주눅 들어서가 아니라 귀찮았다. 초특급 호텔은 아니었으니.


5.

친구를 만나 '해송쌈밥'이라는 우렁쌈밥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신선한 야채를 듬뿍 먹을 수 있어 추천할 만한 집이다. 손님도 많아서 잠시 대기했다가 식사를 할 정도였다. 을왕리해수욕장에서 차로 1~2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031-747-0073)

 

'카페오라' 2층에서 바라본 영종도의 일몰


오늘의 명품 장소는 저녁 7시 남짓한 시각에 들어간 '카페오라'다. 골든스카이 리조트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웅장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카페다. 외관도 장관이고, 내부 인테리어도 고품격이다. 게다가 서쪽을 향해 있는 전면 유리를 통해 낙조를 만끽할 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넋을 잃고 함께 일몰을 바라보았다.


'카페오라'는 그야말로 훌륭한 풍광을 품고 있는 카페다. 내멋대로 선정, 아름다운 카페 BEST 3에 거뜬하게 꼽힐 정도다. 섭지코지의 민트, 영종도의 카페오라, 그리고 워커힐의 우바(woobar)! 모두 웅장하면서도 멋진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카페들이다. 


6. 

친구를 만나서 좋은 것은 황금 시간대에 홀로 들어가기 미안한 카페나 음식점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비용을 반반 나누어 내기도 하니 좋다. 하지만 평일에 불쑥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친구는 많지 않다. 대개 직장에 있을 시간이니까. 또한 비록 당일치기일지라도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친구들은 전체 친구의 1/10 정도 밖에 안 될 것이다. 


친구도 나도 카페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잠시 각자의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그는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고 나는 글을 썼다. 둘다 중요한 일이었고 우리는 그 일을 어느 정도 진척시켰다. 그러는 사이, 해는 져서 캄캄한 밤이 되었다. 


7. 

오늘 여행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골든스카이 리조트의 라운지에서 나홀로 보낸 시간이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손님은 나 뿐이었고, 라운지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렀고, 나는 낭만적인 기분을 느꼈다.

 

골든스카이 리조트 라운지에서...


글을 쓰고 싶어져서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이 글의 얼마간을 썼다. 쓰다가 친구와의 약속이 다가와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 그 때, 내가 쓰고 싶었던 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아! 이렇게 자유롭게 떠돌며 내가 원하는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것이 내가 꿈꾸는 삶의 방식이구나.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니 정말 좋구나. 원하는 대로 살려면, 나의 역량을 더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 엄격하게 훈련해야겠구나.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오늘의 영종도 여행은 내가 꿈꾸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상기시켰다. 나는 언제나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어 왔다. 사실 어떤 특정한 장소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유를 누리는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기이해), 그 길을 내딛을 만큼의 용기를 가졌으며(용기), 생각을 실천에 옮길 만큼 자기를 통제(자기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떤 공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나의 성장을 열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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