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완벽주의 유감

카잔 2012. 11. 18. 22:05

 

 

2012년 11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나는 새로운 책의 챕터 하나를 완성했다.

다섯 개의 짧은 꼭지글로 구성된 챕터를 완성한 덕분에 주말 내내 행복했다.

8천 자의 글자를 늘어놓아 200자 원고지 55매를 채운 것 뿐인데, 어찌나 즐거운지!

 

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 즐거움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든 말든,

나는 잠시 그 즐거움을 음미해 보련다.

음미를 도와 줄 이는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작가 '페터 한트케'다.

 

그의 작품 중에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짧은 소설이 있다.

12월의 어느 날 오후,

한 작가가 그날의 글쓰기를 마치고서 남은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담긴 소설이다.

줄거리도 없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은 책이라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게는 무척 도움이 되었으면서도, 권함을 주저하는 까닭은...

권함의 이유가 다분히 주관적이고,

그 이유란 것도 나에게만 유익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함의 이유를 설명하자니, 20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작가의 밋밋하고 무료한 일상이 궁금한 분들만 보시라.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는 내내 무료할 지도 모르니까.

 

어찌 되었든, 그 작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의 실상을 밝혀 주고 생동감 있게 해 준

몇 줄의 도움으로 그날 하루도 잘 지나간 것 같았다.

작가는 저녁 나절을 순조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섰다.

그는 몇 시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생각에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얼마 전에 울린 것 같았지만

아마도 그 이후로 몇 시간이 더 흐른 게 분명했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작가가 이제 막 그날의 글쓰기를 끝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작가(들이 아니라면 나)는 원하는 만큼의 글을 쓰고 나면 평온함이 찾아온다.

(아쉽게도 그 평온함은 자신이 쓴 글을 보는 순간 깨지고 만다.)

 

그 평온함의 정체가 얼마간의 글을 창조해낸 해산의 기쁨인지,

자신의 직업적 노동에 충실한 데에서 오는 뿌듯함인지,

시간을 잊고 흠뻑 몰입한 데서 오는 행복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그 전부의 총합에다 '좋은 글을 썼다'는 착각이 더해진 것이리라.

 

사실 작가로서의 내 삶은 점선의 삶이고, 단절의 연속이다.

매일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가끔씩만 쓴다.

한 때는 나도 매일 쓰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내가 운영하는 학습 커뮤니티 '와우랩'에서 재미난 일들이 많아 글 쓸 시간이 없다.

 

나의 나태함을 상황의 분주함으로 감추려는 핑계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고 믿으련다).

글이란 게, 다소 한가로운 덩어리 시간에서 나오기가 쉬운데, 요즘 난 꽤나 바쁘게 산다.

그런 분주함 속에서 배운 것도 있다. 쉽게 발동을 걸어 곧장 업무에 착수하는 법을 익혔다.

잃은 것 속에서도 얻은 게 있고,

이쪽에서 한 걸음 진보했나 싶은데 다른 쪽에서는 두 걸음 퇴보하는 게 삶이니,

인생의 사건들 중에서 100% 암흑이거나 100% 광명인 것이 있을까 싶다.

 

인생의 사건들이 암흑이든 광명인지 따져볼 시간 따윈 내게 없었다.

그러다가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얼마간의 여유가 나를 찾아왔다.

토요일엔 와우연구원의 결혼식과 그 후로 이어진 세 시간 정도의 와우들과의 대화가,

일요일엔 글쓰기 멘토링과 예배가 전부였으니 이만하면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주말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나는 새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휘갈겨놓은 8천 자의 글자들 덕분에

페터 한트케가 느낀 그 평온함으로 기분 좋게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일주일도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느꼈다.

쉽게 발동을 걸어 새로운 집필에 착수한 것이 이 평온함에 한몫을 했다.

 

사실 나는 더욱 자주 발동을 걸어 멈춰두고 있는 일들을 힘차게 진행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완벽주의로 인해 삶의 많은 대목에서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준비만 하고 있거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정말 유감이다.

 

2012년 4월 11일. 나는 한 권의 책을 탈고했다. 하지만 출판사로 보내진 않았다.

한 번만 더 훑어보고, 조금만 더 원고를 고쳐보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8월 즈음이면 그 원고를 출간하여 내가 진행하고 있는

1인기업가 과정의 필독서로 참가자들이 읽게 될 줄로 알았다.

하지만, 11월이 된 지금까지 원고는 여전히 내 노트북에 잠들어 있다.

 

과정 참가자들에게는 원고를 모두 출력하여 나눠주었기에, 그들이 읽긴 했다.

반응도 꽤나 괜찮았지만, 그때도 나는 출판사로 보내지 않았다.

퇴짜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내 자신감은 늘 하늘을 찌르는 편이다)

세상의 반응이 염려되어서도 아니다. (작가로서 어느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원고로 만들고 싶다는 완벽주의 때문이다. 나도 미쳐버리겠다.

써 둔 원고는 좀 더 만져야겠고, 새로운 글은 써야겠고,

결국 나름대로 모색한 타협점이 쓴 원고를 노트북에 모셔둔 채로 쓸 원고나 채워가는 것이다.

 

빌어먹을 완벽주의로 인해 엄청난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나도 주의하고 있긴 하다.

한 때 나는, 탈고 수준의 원고 2권과 초고 수준의 원고 9권을

노트북에 저장하고 있던 다작의 작가였다.

해마다, 한권씩, 정성스레 손보아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목표로 양평에 이사갈 작정도 했고

서재와 집필실로 사용하려고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에 가서 작은 집도 계약했었다.

 

그런데 믿지 못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계약을 하고 난 바로 그 날 밤,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저 세상으로 날아간 것이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데이터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날아갔다.

두 달에 걸쳐 최고의 복구센터와 연구소를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암흑이었다.

(글의 서두에 100% 암흑의 사건은 없다고 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 120% 암흑이다.)

 

나는 꾸준히 백업을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PC를 사용한 이래 15년 동안 한번도 데이터 유실이 없었기에

'백업이란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사건 발생 전 약 6개월 전부터 백업을 안했다.

내게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던 이유다.

강연 PPT도, 와우 수업 자료도, 사진도, 몽.땅. 사망했다.

 

그 중 한 편의 원고는 사고가 난 전날에 출판사에 보내려 하다가

딱 사흘만 더 퇴고하자는 욕심으로 갖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사실 많이 많이 울었다. 한동안 방황했고, 힘들어했고, 괴로워했다.)

 

사고는 피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피해 규모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완벽주의만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도대체 다 쓴 원고를 갖고 무얼하기에

계속 끌어안고 있냐는 질문이 들리는 듯 하다.

그에 대한 답변은 어렵지 않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민망하여

누군가가 물어오면 설명해 줄 답변을 미리 생각해 둔 것인지도 모른다.

답변을 위해, 페트 한트케의 소설 속 작가를 다시 불러와야겠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나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후다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방에서 땀 냄새를 맡았고 유리창에 증기가 낀 것을 보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텅 빈 집 전체가 갑자기 새로운 단어 하나로 훈훈하고 살 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도 이런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 말이다.

완벽이라는 성을 쌓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주춧돌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돌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다. 

당신이 이런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갈무리하려는 성정을 가졌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 성정 덕분에 탁월한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덕목이라도

적절함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리면 그 덕목의 고유한 미덕마저 어느 정도 손상된다.

용기가 적절함을 잃으면 만용이 되고, 자유가 적절함을 넘어서면 방종이 되는 이치다.

 

만약 내가 완벽주의를 적절하게 제어할 줄 알았더라면

이 글의 제목은 '완벽주의 유감'이 아니라 '완벽주의 예찬'이 되었을 것이다.

 

글의 제목이 '유감'이 된 까닭은

페터 한트케가 게오르크 뷔히너상, 오스트리아 국가상, 프란츠 카프카상 등을 수상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 작품 하나 달랑 내놓은 이후로는

생산 능력을 상실해 버린 듯한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작가가 되었고, 나는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2류 작가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광명의 날들이 올 것이다. 나는 그러리라고 희망한다.

올해 나는, 모든 원고를 유실한 이후로는 처음으로, 책 한 권을 썼다.

나는 머지않아 4월 11일을 생일로 가진 그 원고를 들고 출생 신고를 할 것이다.

 

어제부터 쓰기 시작한 원고는 100일 후면 탄생할 것이다.

어쩌면 난 그 날로 바로 출판사로 달려가, 세 번째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게 될지도.

그럼으로써 나는 완벽주의와의 별거에 성공할지도.

(완벽주의와는 결별은 요원하니 별거라도 시도하는 게 내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성장해야 한다.

최소한 완벽주의라는 놈과 싸워 이길 정도까지는 말이다.

어떤가? 제목은 유.감.이지만 왠지 나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은가?

 

나는 페터 한트케의 또 다른 소설『긴 이별을 위한 편지』를 읽어야겠다.

한트케는 그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긴 이별을 위한 편지』를 통해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서술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