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매일의 의무가 되어버린 운동

카잔 2013. 4. 11. 16:29


오늘은 점심 시간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오전에 운동을 했다. 저녁 글쓰기 수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을 테고, 그 시각에 운동을 하기란 매우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빠짐없이 운동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노력을 다하여 성공한 날 중 하나일 뿐이다. 


운동을 하지 못한 날은 열심히 살았다고 해도 뭔가 중요한 것 하나를 빠뜨린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부터 운동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은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 연습이 중요해진다. 건강관리가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동을 생각하게 된다. 미친 듯이 뛰기도 하고, 헬스클럽의 밀폐된 공간에서 땀을 쭉 빼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운동은 하나의 의무가 된다. 다녀와야 책임을 다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놀이정신은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이 된다. 출근하듯 운동을 한다."


선생은 육체적 연습이 중요해지는 나이를 '마흔이 되면'이라고 썼지만, 내가 슬쩍 '나이가 들면'이라고 바꿔썼다. 마흔이 되지 않아도 운동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애늙은이가 있을 테니까. 놀이정신을 잃은 채로 출근하듯 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은근히 울적해질 만도 한데, 오늘은 포부를 다졌다. 놀이정신을 회복해 보자고.


운동이 의무가 되는 과정은 이렇다. 난 운동하는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에 소홀했던 까닭이다. 이젠 운동 없이는 건강을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운동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가치관은 여전히 운동보다 독서를 위에 둔다.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일에 절대적 필요성을 부여할 때, 그 일은 의무가 된다. 애석한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온전치 못해 의무감을 느끼는 거라고.


놀이정신을 잃어버리는 까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놀이정신의 핵심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원할 때에 한다는 것이다. 일과 놀이가 되는 행위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그 행위의 주체가 되면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놀이도 지금은 하기 싫은데 누군가가 시켜서 하게 되면 놀이가 아닌 일이 된다. 요컨대, 어떤 행위를 놀이처럼 즐기려면 자발적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운동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중요하다고 느껴서 숙제처럼 해 왔다. 이것은 마치 숙제를 대하는 학생의 태도와 닮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숙제를 의무로만 생각하지만, 어른이 된 내가 보기엔 어떤 숙제는 의무 그 이상이다. 숙제는 실력 향상을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훌륭한 선생이 내어준 숙제라면 숙제에 달려들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요 성장이다. 숙제를 의무로만 여기는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숙제의 유익과 성장의 과정에서 숙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큰 그림이다. 


운동을 숙제처럼 여기는 나의 태도가 유아적이라는 (최소한 학생이 숙제를 대하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은 매일 해야 하는 의무 그 이상이다. 운동은 삶의 행복을 위한 필연적인 수고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다. 무엇보다 운동에 몰입할 때의 쾌감 자체만으로도 운동은 달콤한 성취다. 


나에게도 운동의 유익과 인생의 행복이라는 큰 그림에서 운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운동의 유익과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매일 운동하는 것을 의무가 아닌 특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궁금하다. 궁금하니 내 삶으로 직접 실험해 보아야겠다. 내가 의무감 없이 어린아이가 놀이하듯이 운동을 즐길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