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어머니가 차려 준 점심상

카잔 2008. 2. 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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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선데이 <하이파이브>를 보았다. 유쾌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5명 여인들의 직업체험 22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어머니들에게 20년 전의 젊은 모습을 되찾아 드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5명의 여인들이 어머니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들은 어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을 만지기도 하고 거칠어진 피부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딸의 화장을 받은 어머니들은 무척이나 고우셨다. 아름답고 젊으셨다.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이후, 딸들은 모두 어머니 전상서를 써서 그네들의 어머니를 모셔 두고 편지를 읽어 드렸다.

닳아서 내려 앉은 엄마의 잇몸을 보고 병원 구석에서 많이 울었다는 박경림,
딸에게 "우리 잘난 딸 고맙다. 내가 너 힘 입어 열심히 살께"라고 말씀하시는 이해선 여사님.(박경림 어머니)

"도전해 봐. 할 수 있어"라고 늘 딸에게 용기를 주셨던 박종순 여사님(현영 어머니).
그 어머니는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딸에게 슈퍼모델 원서를 내미시고
대회선발전에서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잃은 딸에게
"네가 제일 예쁘다. 아무것도 아냐 재네. 내 느낌엔 네가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 어머니~

조혜련씨의 편지글은 짧았다.
방송 컨셉 때문이긴 하지만, 너무 빨리 편지가 끝나서 서운하실 수도 있을 어머니는
"얜 시간이 없어. 어디 한 번 안아나 보자." 하며 딸을 안아 주시는 최복순 여사님(조혜련씨 어머니)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영상 편지를 보내는 조혜련씨의 모습을 보면서는 나도 눈물이 났다.

채연과 그의 어머니는 또 한 번의 찡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현영이 편지 글을 읽을 때, 채연과 장행순 여사님(채연 어머니)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난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아무 생각없이 쳐다보았을 수도 있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눈빛으로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 생각없이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으며, 눈빛 만으로도 마음을 주고 받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하이하이프>를 보며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채연의 순서가 왔고 편지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엄마...
새벽이든 몇시든 간에 매일 아침 밥상 두둑이 차려 주신 덕분에 하루 종일 든든하게 일해요.
안 먹겠다고 툴툴거려도 한 숟갈이라도 먹이려는 모습에 억지로라도 꼭 먹고 가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래오래 사시라고, 그래야 왕따시만큼 효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채연과
그 딸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밥을 차리다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나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밥상을 보니 여느 때보다 찬이 없었다.
(사실, 최소한 베이컨과 계란후라이, 김치, 김 정도는 있는 편인데)
계란과 베이컨이 떨어져서 그냥 김치와 김으로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잘 없다.)

그런데, 문득 이 모습을 보면 엄마가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결코 아들의 밥상을 이렇게 차려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이라도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식사를 챙겨 주시는 어머니 아닌가!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장을 보러 갔다. 어머니라면 아들 희석에게 어떤 반찬을 만들어 주실까, 를 생각하며 음식을 샀다. 여느 때 같으면 간단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샀을 텐데, 오늘은 아들에게 손수 만들어 주시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골랐다. 그랬더니, 바로 먹을 수 있는 맛밤보다는 직접 삶아야 하는 생밤을 고르게 되고 요리하기가 귀찮아 사지 않던 쇠고기도 사게 되었다. 그저께 생일 때 그냥 넘어던 미역국도 끓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란도 비싸서 잘 사지 않던 최고급 란으로 고르고, 저녁에 먹을 항정살과 상추도 샀다. 밑반찬도 조금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군고구마를 좋아하던 나에게 고구마를 구워 주고 싶어하실 엄마의 마음으로 고구마도 샀다. 2, 3만원치의 장만 보던 내가 오늘은 5만원 가까이나 지출했다.

집으로 돌아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쇠고기를 살짝 데쳐 미역국에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려는데 유통기한이 지나 굵은 소금으로 대체했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라. 일명 '마음대로 조리법'이니까.) 쇠고기를 살짝 구워 맛소금과 함께 준비하고 구입한 밑반찬도 곁들였다.
이틀 지났지만 그럴 듯한 생일상이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보았으니 엄마가 차려 준 상이나 다름없다. 평소의 내 생각이라면 생일상이라도 대충 때웠을 터였고 장을 보면서도 주머니를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보니 가장 먼저 나의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슴이 절절한 체험이었다. 고구마를 집어 들며 눈물이 핑 돌던 체험이었으니.

<하이파이브> 덕분에 든든하게 식사하고 이 글을 쓴다. 어머니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깨달음이 드는 체험이었다. 먹었던 것들을 먹지 않고, 안 먹었던 것을 먹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했던 일들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만드는 삶을 변화시킬 만한 사건이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본다면 훨씬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사랑한다면 훨씬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어머니가 차려 준 점심상... 참, 절절하면서도 애틋한 기분이 드는 휴일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