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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 김씨


"좌참찬 김시묵의 딸이다. 1762년 10세 때 세손비로 책봉되어 정조와 어의동 본궁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진봉되었다. 그녀는 효성이 지극하여 시어머니 혜빈 홍씨를 지성으로 모셨기에 궁중에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우애가 극진하여 고모인 화완옹주가 그녀를 몹씨 괴롭혔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왕가의 자녀들을 돌보는 데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성품이 고결하고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 사가에 내리는 은택을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그래서 수진궁과 어의궁에 쓰고 남는 재물이 있어도 궁중의 물품은 공물이라 하여 일체 사가에 보내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 채 1821년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으며, 생전에 여러 차례 존호가 올려졌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능은 경기도 수원의 건릉이다."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 김씨에 대한 설명이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中)
<이산>을 보며 효의왕후의 성품에 연신 감탄을 했다.

한 나라의 왕이 될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로서의 효의왕후는 참 고결하고 지혜로웠다.
상궁과 혜빈마마가 성송연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에도
효의왕후는 그 아이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산이 세손이었을 때,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산을 보기 위해 가다가
'힘든 길을 가실 분께 내 눈물까지 보낼 순 없네'라며 지아비에게로 가던 걸음을 침전으로 돌렸다.
효의왕후는 누군가를 100%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효의왕후에 대한 아래의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떠올랐던 사람이 있었다.
"성품이 고결하고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 사가에 내리는 은택을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그래서 수진궁과 어의궁에 쓰고 남는 재물이 있어도 궁중의 물품은 공물이라 하여 일체 사가에 보내지 않았다 한다."

2기 와우팀원인 그녀는 분명 효의왕후를 닮았다. 그녀는 아직 젊다. 그의 남은 일생이 더욱 찬란히 빛나리라 믿는다. 성품은 더욱 고결해지고 정직한 심성을 잃지 말기를...
일평생 정조의 현모양처로 살았던 효의왕후처럼 그녀의 꿈도 현모양처다. 일평생 아름답게 고결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그녀는 2007년도에 하나님을 만났고 이후 짧은 시간에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그의 믿음이 훌쩍 성장한 것은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살전2:13) 말씀을 받는 그녀의 태도는 말씀이 그녀의 삶 가운데 역사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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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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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31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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