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의미와 영원을 추구하는 인생

카잔 2008. 3. 2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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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벌벌 떨며 사발을 집어 든다.
사발 안에 든 사약을 들이마신 사내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화완옹주와 함께 이산을 모략하고 당쟁을 주도한 정후겸의 최후다.

그 날, 정후겸은 낚시를 다녀왔다.
인생에서의 마지막 날을 낚시를 하고 유배지로 돌아왔다.
그 곳에는 홍국영과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국영과 정후겸은 이생에서의 마지막 술자리를 가진다. 간단한 술자리다.

홍 : 낚시를 다녀오셨다 들었습니다.

정 : 그랬네. 이곳에 와 쭈욱 포구에서 낚시대를 들이대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내 번잡했던 마음이 달래지더군.
어쩌면 날 낳아준 친아비처럼 그렇게 평생을 어부로 살았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어.
내 괜한 쓸데없는 얘기를 했군. 이제 조정을 쥐고 흔들 권세를 쥔 자네한테는 공연한 소리가 될 텐데 말이야.

홍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어부로 살아도 한 평생, 만인지상의 권세를 누리고 살아도 똑같은 한평생일 뿐이지요. 눈 떴다 감으면 똑같이 구름처럼 흩어지고 마는 인생인데 어부로 산다한들 임금으로 산다한들 따지고 보면 뭐 그리 유별한게 있겠습니까.

정 : 그렇다 해도 자네는 권세가 좋겠지. 아니 그런가?

홍 : 네. 어차피 다르지 않다 해도 전 신나게 한바탕 놀다 갈 겁니다.

정 : (남은 술을 마시며) 술은 이제 그만해야겠네. 자네가 가져온 것이 이 술 만은 아닐 것이니 말야.

홍 : 영감...

정 : 그래도 자네가 와 줘서 고맙네. 내 자네가 보고 있다면 오기가 생겨서라도 초라하게 죽지 않으려 애를 쓸 테니 말야.


홍국영과 정후겸의 마지막 대화다.
아... 많은 생각이 든다. 권세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마지막에는 평범한 어부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것뿐인데...

천하를 쥐고 흔들던 중전마마와 화완옹주, 정후겸 등 노론 벽파 일당이 드디어 죄값을 치뤘다.
<이산> 47회가 되어서야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가슴을 치며 원통했던 원한이 풀어졌다.
이것을 보기 위해 9일동안 5회분부터 47회 분까지 미친듯이 밤을 새며 보았다.
이 역당들이 모두 죄값을 치뤄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생각했던 만큼 마음이 후련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다.
권세가 덧없고, 내가 가졌던 감정이 덧없다.

사도세자를 당쟁으로 인해 저 세상으로 보낸 혜빈마마의 한은 얼마나 많을까?
옥에 갇혀 있는 화완옹주에게 혜빈마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마음을 참 정확히도 표현했다.

"생각보다 그리 마음이 편치 않네요.
내 그토록 바라던 일인데 막상 이 꼴을 하고 있는 옹주를 보니 그저 옹주가 한 짓이 한스럽고,
내가 그동안 품었던 원망이 다 무엇이었나 속절없기만 합니다."


정후겸이 의금부에 투옥되었을 당시, 홍국영이 그를 찾았다.
정후겸은 "잘 보고 새겨두게. 이것이 자네가 그토록 원하던 권세의 끝이니까.
그리 멀지 않을 걸세. 권세를 두 손에 웅켜쥐면 쥘 수록 그 순간은 더 빨리 다가오겠지.
결국 자네도 나와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것이네.
이런 꼴로 주저 앉아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야."

홍국영의 대답이 의미 심장하다. "글쎄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허나 너무 심려지 마세요. 저는 손에 쥔 권세를 절대로 놓치 않을 것입니다."
훗날 홍국영의 권세는 세도정치라 불리울 정도로 초고속 비상을 하게 되고,
누구보다 빨리 추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좌천된 후 지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권세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 32세, 죽음을 맞이한 나이가 33세였다.
권세를 두 손에 웅켜쥐면 쥘 수록 끝이 빨리 찾아온다는 정후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저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부와 권세를 쫓았던가!
최고, 최대의 인생을 추구하기보다
의미와 영원을 추구하는 인생이 더 행복하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 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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