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명저 이야기

그리스 고전 문학 '단숨에' 읽기

카잔 2013. 7. 10. 16:08

 

그리스 고전 문학 '단숨에' 읽기

   - 마틴 호제의 <희랍문학사>에 대하여

 

여러분이 만약 세계문학의 기원이나 인문학 공부의 정수를 공부하고 싶다면 고대 그리스의 유산부터 살펴야 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비극 그리고 철학 텍스트를 말합니다. 그들의 문학과 철학이 인류 문명의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그 주인공들이니, 그리스 유산의 명성과 중요성을 짐작하시겠지요?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앞서 이 글을 쓰는 제 입장을 전하겠습니다. 두 가지의 입장을 견지하며 오늘 글을 쓰려 합니다.

 

1) 여러분이 그리스 문학이나 서양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 독서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임을 명심하고서 글을 썼습니다. 몇 권의 책을 소개했는데, 전공자로서의 학술 공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인문 소양을 키우는 데에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도움을 주는 책만을 추천했다는 말입니다.

 

이를 테면, 마틴 호제의 <희랍문학사>는 우수한 학술도서지만, 그리스 문학을 이해하려는 강렬한 열망이 없는 상태에서 400페이지를 재밌게 읽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니 호제의 책은 추천 대상에서 제외입니다. 그럼 왜 이 책을 표제도서로 선정했냐고요? 제 대답은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저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책을 추천했습니다. 이것은 아슬아슬한 목표입니다. '아슬한' 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생산적 독서는 자칫하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되기 바로 직전의 최고로 생산적인 '인문 소양 공부'를 위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2) 오늘은 표제도서에 대한 이야기보다 다른 곳에서 공부한 제 설명이 더 많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표제도서인 <희랍문학사>를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문 중에 추천한 도서를 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희랍문학사>를 들먹인 것은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잠시, <희랍문학사>라는 책의 제목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를 '헬라스'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인들이 스스로를 부를 때엔 '헬레네스', 그들의 문명은 '헬레니즘'이 됩니다.) 헬라스의 한자어가 '희랍'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도 한때 <희랍인 조르바>로 번역되기도 했지요. 책은 제목 그대로 그리스 문학을 다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이곳저곳에서 배운 그리스 문학의 발전 양상을 설명하겠습니다. 잘 따라오시면, 제가 소개할 책들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시고 동의하실 겁니다. 그리스 문학은 다음과 같은 장르의 순서대로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서사시 -> 서정시 -> 비극 -> 희극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서사시는 중요합니다. 대표 서사시인은 호메로스요, 그가 쓴 두 편의 서사시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입니다. 6세기에는 서정시가 등장합니다. 사랑을 노래한 '삽포'가 가장 유명한 서정시인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비극과 희극이 등장합니다. 장르마다의 대표 작가들을 아래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서사시 :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서정시 : 아르킬로코스, 삽포, 핀다로스

비 극 :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희 극 : 아리스토파네스

 

고대 그리스의 슈퍼스타급 시인들과 극작가들입니다. 이름만이라도 기억해 두시면 도움되실 겁니다. 이들 장르 중에서도 특히 서사시와 비극이 중요합니다. 서정시와 희극에 비해 후대에 미친 영향이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기억할 작가를 더욱 엄선하면, 호메로스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크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되겠습니다.

 

인문학 공부의 정수인 그리스 문학의 유산에 접속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필수적인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리스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은 아래의 이름부터가 낯설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일 뿐입니다. 차츰 익숙해지실 겁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그리고 3대 비극 작가의 <아이스킬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입니다. 만약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호메로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까지 포함해 두세요. 희극에 관심이 있다면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을 읽으시고요. 총 7권입니다.

 

어떻습니까?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요? 7권이라는 책의 권수는 다소 많으니까요. 게다가 각권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지요. 그래서 더욱 엄선하여 단 2권으로 줄여보죠.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그리스 비극 걸작선>!

 

2권이면 도전할 만 하지 않으세요? 이제 두 권의 책을 읽는 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기 전에는 우선 <일리아스>를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면 좋습니다. <일리아스>가 먼저 쓰인 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용상으로 한 가닥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작 한 가닥이니 두 서사니는 별개의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세기에 일어난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서사시입니다.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죠.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아의 명장 '헥토르'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고 보았던 이야기지요? 가물가물하시면 영화 <트로이>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일리아스> 읽기를 대체하시면 됩니다.

 

<일리아스> 읽기를 영화 한 편으로 대체하는 것이 문학인들의 노여움을 살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적은 노력으로 최고의 독서 효과를 얻는다"는 글의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렵니다. 영화 <트로이>로 트로이아 전쟁을 거칠게 스케치하시고 <오뒷세이아>를 읽으시면 됩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중 한명인 오뒷세우스의 귀향담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험담이요, 여행담일 겁니다. 오뒷세우스가 낭만적인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고,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는 모두 중요합니다. 잠깐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진득하게 달려들어 공부할 만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리스 문학에 관한 단 '2권의 책'만을 고른다면, 저는 <일리아스>가 <오뒷세이아>에 밀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뒷세이아>가 후대의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뒷세이아>를 대신할 영화도 없고요.

 

<그리스 비극 걸작선>은 희랍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시는 천병희 선생이 엮은 책입니다. 3대 비극작가의 작품들은 아이스킬로스 7편, 소포클레스 7편, 에우리피데스 18편이 후대에 전해졌는데, <그리스 비극 걸작선>은 세 작가들의 대표작 2편씩 총 6편을 엮은 책입니다.

 

그리스 문학을 엄선(!)하여 두 권의 단행본으로 추천 드렸으니 분량으로는 만만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았습니다. 배경지식 없이 두 권의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여기서의 배경지식이란 인문학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서사시와 비극은 현존하는 모든 문학 텍스트보다 먼저 쓰인 책들이니 내용에 관한 배경지식을 갖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읽어 두면 다른 여타의 문학 작품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요. 두 권을 읽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이란, 어떤 '내용'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 서사시와 비극의 '형식'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두 원전을 읽는 데에는 그리스 문학 장르의 형식적 특징을 설명하는 참고서가 필요한 셈입니다.

 

우선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오뒷세이아> 원전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 고전 문학을 처음 읽으신다면 형식과 언어가 낯설어서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대진 선생의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오뒷세이아>나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를 곁에 두면서 함께 읽으면 되겠습니다. 전자는 청소년용, 후자는 성인용 참고서이니 끌리는 책 한 권만 읽으시면 됩니다.

 

<그리스 비극 걸작선>의 참고서로는 천병희 선생이 쓴 <그리스 비극의 이해>가 있습니다만, 다음 주에 제가 직접 간결한 그리스 비극의 참고글을 작성하여 찾아뵙겠습니다. 천병희 선생보다 설명을 잘 해서가 결단코 아닙니다. 책 추천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읽을 책에 비하면 인생은 턱없이 짧으니까요.

 

이제 글을 맺겠습니다. 마틴 호제의 <희랍문학사>는 어떡하냐고요? 대부분의 독서가들에게는 희랍문학의 '역사'를 아는 것보다 희랍문학의 중요한 '작품'들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라면, 희랍문학사는 오늘의 제 설명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떤지요? 괜찮으시다면, 바로 '2권의 책'으로 뛰어드세요.

 

마틴 호제의 책 제목 정도는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스 문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때, 손에 들어야 하는 책이니까요. <희랍문학사>의 역자는 옮긴이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읽은 다른 희랍문학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히 긴 시기를 다루면서도 책의 분량이 훨씬 적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지지부진한 일일연속극보다 전개가 빠른 수목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과감한 생략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전체를 개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들어 번역에 착수하였다."

 

희랍 문학을 2권으로 추천한 것은 과감하다 못해 무모한 생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의 유익과 장점은 있으리라 생각하며 글쓰기에 착수하였습니다. 2권의 독서를 실천하시어 장점과 유익을 제게 말씀해 주시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 독자를 위해서라면 무모함도 마다않는,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