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명저 이야기

찰스 핸디『포트폴리오 인생』

카잔 2013. 5. 20. 13:32

 

 

겸손하고 지혜로운 멘토, 찰스 핸디

- 찰스 핸디의『포트폴리오 인생』를 읽고

 

탁월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그도 경영학 구루로서의 경력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은, 1976년에 출간된 『Understanding Organizations』을 지금까지 4번이나 수정 보완하며 개정판을 낸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으로 2011년에 초역되었지요.) 세계도 그의 경영사상가로의 업적을 인정했습니다. 그의 책 『텅 빈 레인코트 The Empty Raincoat』는 1994년 '올해의 경제 평론가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미국 선탑미디어와 유럽경영개발재단(EFMD)이 발표한 ‘50인의 사상가’에 찰스 핸디를 피터 드러커에 이은 2위로 선정했습니다.(www.Thinker50.com)

 

찰스 핸디를 경영학자로만 설명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철학을 전공하고 고전을 즐겨 읽어온 그는 이야기에 능하며, 삶의 지혜에 통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작가입니다. 책에서도 자신을 그리 표현합니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것들은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훌륭한 작가입니다. 심오한 것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탁월합니다. 고전문학을 읽은 이력과 삶의 다양한 경험을 지닌 이가 비유와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니, 독자로서는 달콤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됩니다.

 

찰스 핸디가 경영의 구루가 아니라, 인생의 멘토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탁월하게 해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은 『포트폴리오 인생 Myself and Other More Important Matters』입니다. 책의 원제가 이 책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신에 관한 혹은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담은 이 책은 핸디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텍스트지요.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분산투자를 의미하는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을 시간활용에 대입한 것입니다. 찰스 핸디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라고 주장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제목은 책의 일부를 표현할 뿐이라는 점에서 나는 제목에 불만이 있지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높지만, 그는 해답을 제시하려 들지 않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떤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이처럼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진정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를 성찰케 하는 그의 힘을 개리 헤멀도 잘 지적했지요. “대다수의 경영사상가들은 ‘어떻게’의 문제에만 집중하지만, 찰스 핸디는 독자로 하여금 ‘왜?’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찰스 핸디는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고서, 그것을 찬찬히 돌아보며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를 사유케 합니다. 실제로 먼저 살아 본 ‘선생’으로서 계몽주의적 태도 없이 그저 이야기합니다. 재밌고 진솔하게.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 책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책 자체가 나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다. 변화해온 삶 속에 등장했던 여러 찰스 핸디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만나고 성찰하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우리에게 무슨 생각을 하게 만드는가? 이것이 책의 내용입니다. 우선 정체성을 다룹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주변 상황이 워낙 단조롭거나,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일 게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진짜 모습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됩니다. 답을 얻든 그렇지 않든 유익한 질문이 있는데, 핸디는 그런 질문만 던집니다. 정체성 외에도 공교육, 진정한 학습, 경력의 의미와 한계와 같은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다루는가 하면, 주방과 서재, 직장생활, 여행 등 손에 잡히는 일상의 소재도 훌륭히 요리해 냅니다.

 

지혜로운 스승이 마지막 챕터의 결론으로 내놓은 문장도 묵직하더군요. “누구나 시간의 모래 속에 족적을 남기겠노라는 원대한 희망과 야망을 품고 결연하게 길을 나선다. 그리고 결국에는 볼테르의 철학소설 『캉디드』의 주인공 캉디드처럼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지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이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 그렇다. 이제 나는 침대에 편안히 누웠다. 흡족한 마음으로.” 책은 경영이론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으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언어는 쉽지만, 내용은 깊으니 찰스 핸디의 인생 수업에 흡족해할 테고요. 깨달음을 내놓을 뿐 억지로 쥐어주려 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찰스 핸디, 그는 내 삶의 멘토입니다.

 

- 핸디 할아버지의 건강을 빌며,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