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명저 이야기

티베트 불교에서 배워야 할 것

카잔 2013. 1. 1. 21:26

 

티베트 불교에서 배워야 할 것

- 소걀 린포체의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서평

 

 

새해가 은빛처럼 밝게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밤사이 내린 눈 덕분에 White New Year를 맞았으니까요. 해맞이를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아침에 눈부신 거리를 바라보며 이런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이라는 은빛 도화지에 나다운 발자국을 힘차게 내딛어야지!’

 

글을 쓰는 저와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는 한 해의 삶을 시작하는 기쁜 오늘이지만, 아침에는 삶과 작별하고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분도 있습니다. 신바람 박사로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황수관 선생의 발인식이 오늘(2013년 1월 1일) 오전 8시에 있었거든요.

 

고인이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뜻밖의 시기에 떠났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세상 대부분의 죽음은 뜻밖의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니까요. 내 친구도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났고, 나의 어머니와도 한 마디 작별 인사도 없이 별안간에 헤어졌지요.

 

“텔레비전을 켜거나 신문을 읽어 보십시오. 도처에서 죽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고인이 된 이들은 자신이 비행기 추락 사고나 자동차 사고로 죽으리라는 사실을 예측이나 했을까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다가 갑자기 떠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지인이나 친구가 예기치 않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요?”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책을 쓴 소걀 린포체의 말입니다. ‘린포체’란 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를 이르는 단어입니다. 고매한 스승의 책이라 해도 새해 벽두부터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다루는 까닭이 뭐냐고 물으실 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이 책을 새해 첫 추천도서로 꼽은 것은 의도적입니다.

 

역자는 우리가 “죽음을 부인하게끔 교육 받았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상실과 소멸을 뜻한다고 배웠으니, 우리는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을 불경하거나 예가 아닌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걀 린포체는 죽음을 외면하는 문화는 건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죽음에 대한 분명한 사실은 우리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언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미루고 있는 이들에게 소걀 린포체는 훌륭한 멘토입니다.

 

“죽음이란 실재하는 것이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은 삶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거듭하여 말합니다. “죽음을 낯설게 여기지 마십시오. 죽음과 자주 접촉해야 합니다.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합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티베트 불교의 특징입니다. 죽음과 친하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는 환생을 믿습니다.) 서구에서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건강한 죽음 문화를 갖지 못했고, 웰다잉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역시 티베트나 불교에 관심이 없더라도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티베트 불교에서 배울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죽음으로부터 배울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나에게는 식상한 질문입니다. 십여 년 전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며, 자신의 필멸성에 직면하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아무 생각 없이 불멸성을 믿으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로부터 알랭 드 보통에 이르기까지 죽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역설했습니다.

 

그 지혜를 한 마디로 하면, ‘생을 향한 애착의 회복’입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무거운 훈계가 아닌 현재의 삶을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자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소걀 린포체 역시, 이런 관점으로 책의 마지막에서 몽테뉴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죽음을 몸에 익히는 것은 자유를 실습하는 것이다. 죽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배운 셈이다.” - 몽테뉴

 

어린 시절부터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소걀 린포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차원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조언도 들려줍니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대면한다는 것이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이나 티베트에서 살면서 우리의 삶 전체를 명상 수행에 바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을 해서 돈도 벌어야 하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균형을 잡고 중도를 발견하는 것이고 인생의 핵심에서 동떨어진 활동이나 편견에 지나치게 말려들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의 삶 속에서 균형을 잡고 행복하게 사는 열쇠는 단순함에 있습니다.”

 

책에는 죽음과 삶에 관한 지혜뿐만 아니라, 명상을 하는 방법과 단순하게 살기 위한 조언도 실려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죽음만 생각하라는 것은 책의 메시지도 아니고 소걀 린포체의 주장도 아닙니다. 하루 한 번, 고요한 5분의 명상을 하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당신이 여인을 쫓아다니거나 돈 버는 일과 같은 번거로운 일에 쏟는 시간 가운데 십 분의 일만이라도 영적인 수행에 사용한다면, 당신은 몇 년 안에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 라마크리슈나

 

‘매일 읽는 린포체의 명상 일기’라는 부제를 달아, 하루 한 페이지씩 365일을 명상할 수 있도록 쓰인 책입니다.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로 쓰였으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읽어야 할 것입니다. (소걀 린포체의 전작 『티베트의 지혜』는 삶, 죽음, 환생을 상세히 다룬 책이고,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는 일일 명상집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티베트 불교의 환생을 믿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영적 스승들이 전하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입니다.

 

창밖에서는 다시 함박눈이 내립니다. 더욱 많이 내려 신바람 박사님의 마지막 가시는 걸음이 미끄럽지 않고 폭신폭신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송이가 큰 걸 보니 세상의 은빛이 좀 더 진해지겠군요. 여러분의 새해도 은빛처럼 아니 금빛처럼 환히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 살아서 새해를 맞이한,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