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명저 이야기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사람

카잔 2013. 4. 24. 14:55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사람

- 구본형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고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 구본형

 

내가 직접 만나본 가장 행복한 사람은 구본형 선생님입니다. 신중한 이들은 ‘행복한’ 사람인지,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인지는 쉬이 알 수 없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의 행복을 평가할 때에는 그의 삶 전체를 넘어 후손들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신중하게 글을 쓰는 편이라, 누군가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과연 무엇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 숙고하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슴으로 쓰려 합니다. 객관성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글의 목적은 행복의 검증 조건을 따지는 게 아니라, 생전에 구본형이라 불리었던 인물을 가볍게 살펴보는 것이니까요.

 

글의 서두에서 구본형 선생님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언한 것은 종종 그의 삶의 일부를 들여다보고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참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 행복하게 사시는구나. 나도 저리 살고 싶다.' 나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그의 일상을, 사람들과 주고받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부러워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구본형 선생님의 삶과 그의 사유 세계를 알 수 있는 책을 묻는다면, 나는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권하겠습니다. 책이란 것이 당연히 저자의 생각을 담게 되지만, 이 책은 더욱 직접적으로 저자의 삶과 사유의 근원을 보여 줍니다. 이 책을 권한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1) 아내와 딸들에 대한 가장의 생각에서부터 북한산 자락에 집을 구하는 과정 등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2) 실험정신, 하루경영, 미래회고, 자연친화적인 변화경영, 시간에 대한 관점 등 그가 강조하는 자기경영의 담론들도 담겼습니다. 3) 누군가를 알아가는 방법 하나는 그가 좋아하고 싫어했던 것들을 살피는 것입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선생님이 가장 좋아한 책입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14권의 책을 썼다. 그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이것은 마흔 살의 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개정판 서문에 쓰인 말입니다. 책을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도 있겠군요. ‘40대 10년을 담아낸 자서전’ 혹은 ‘마흔 살에 시작한 자기경영 프로젝트’ 등.

 

나는 이 책을 2번 읽었습니다. 2007년엔가, 2008년엔가 처음 읽었는데, 당시에는 10장(학습)과 11장(일)에서 큰 감명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1인 기업가로서 나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법을 배웠고, 프로페셔널로서 살아가는 데에 좋은 이정표가 되었던 책입니다.

 

두 번째로 읽은 것은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2013년 4월 7일부터 약 보름 동안입니다. 이번에는 2장(마흔 살)과 6장(자연)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직 중년의 나이는 아닙니다만, 젊음의 탄력과 에너지가 내게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2장에 나오는 마흔 살의 특징에 관한 내용들은 그런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치료란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것이다. 중년은 강력한 치유력을 요구한다. 물질적 관심이나 외부의 성공은 여전히 매력적인 주제지만, 서서히 쇠약해지는 육체에 갇히게 되면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해진다.” (p.57)

 

"마흔 살이 되면 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로감 때문에, 자신에 대한 다소의 실망감 때문에, 그동안의 실패의 전력 때문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p.50)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자기경영을 다룬 6장의 내용도 황홀합니다. “내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할 때,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자연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않았던 일이기도 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나무라고.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고.(p.167) 이어서 그리 비유한 까닭을 설명합니다.

 

“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고,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중략) 내 책도 내 일 년 삶의 기록이다. 나무가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이면 내 일 년도 지난다.”

 

제가 생각하는 직업적 행복이란,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관계적 행복이란, 삶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 교감하는 것입니다. 일상적 행복이란,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오롯이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모든 행복을 힘써 추구하셨고 흠뻑 누리신 듯합니다. 제가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생각과 맞닿은 구절들을 옮겨 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p.299)

 

“나는 둘째 아이와 가진 20~30분 정도의 간식 시간을 일 년 반 정도 즐겼다. (나중에는 아내가 퇴직을 하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주로 아내의 일이 되었다.) 그때 오늘은 무엇을 함께 먹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떤 때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사오곤 했는데, 신이 나서 그 일을 했다. 나는 그 일을 즐겼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다.”(p.130)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중략)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하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p.221~22)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니 한 가지가 아쉬웠습니다. 선생님께서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들과 보내었던 시간이 적지 않은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선생님은 2005년에 1기 연구원들을 뽑으셨고, 그 이후부터 매년 한 기수씩 연구원들을 선발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놀고 배우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만의 방식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빠진 것은 책이 출간된 해가 2004년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행복이고 사랑이었던 변화경영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님의 제자들이 들려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선생님처럼 멋진 삶을 살기를 열망하고 좋은 죽음을 맞기를 희망하는 어느 제자들 말입니다. 책에는 평화로운 죽음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당신이 바라셨던 대로, 가족들의 사랑의 언어를 들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 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은 좋은 일이다.” - 구본형

 

- 행복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보았던,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