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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읽기를 권하는 3가지 이유

카잔 2014. 2. 4. 09:18

 

예전의 공병호나 김미경 정도의 인기를 요즘엔 철학자 강신주가 점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공중파 예능프로그램까지 나선 인기가 놀랍습니다. 그의 내공과 독자와의 소통이 한몫 했을 테고, 인문학 열풍이라는 상황도 거들었을 테지요. 한 사람의 독서가로서, 그리고 인문학도로서 강신주에 대한 생각을 적어 봅니다. 힐링캠프를 보지 못하고서 쓴 글이라 어제의 강신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1번은 제목처럼 강신주 읽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2번은 강신주의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소개했고 3번에서는 강신주라는 멘토를 바라볼 때 들었던 제 개인적인 비판의식을 담았습니다.

 

1.

어젯밤 <힐링캠프>에 강신주 박사가 나왔나 보다. 아침부터 포털사이트에 '강신주'를 키워드로 한 연관 검색어가 많다. 나는 독서 강연이나 인문학 강연에서 강신주의 책을 자주 추천한다. 최소한 세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우선, 그는 책을 쓸 줄 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철학 대 철학> 정도에서부터 단행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잡은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나 <감정수업>은 기획, 편집, 내용 모두 훌륭하다. (스스로 제목을 뽑기보다 편집자를 신뢰한 것도 한몫 했다.) 감수성이 뛰어난 덕분인지, 좋은 내용을 잘 읽히도록 쓴다. 그는 대중이 열광할 글을 쓰지만, 대중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둘째, 그는 인문정신을 가졌다.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출간되는 책이 굉장히 많아졌지만 허접한 책들 역시 그만큼 많아졌다. 인문학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사유 없이 문사철 지식을 갖추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담아 인문학의 '실용성'을 외치는 책들은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 책들은 위인들이나 잡스와 같은 CEO들이 인문학 책을 읽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문소양은 문사철 지식만으로 쌓이는 게 아니다. 문사철 지식은 인문정신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인문정신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들의 총칭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문정신은 합리성, 감수성, 자유, 비판이다. 인간다움에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고찰이 인문학 공부이고, 문사철 식견이 그러한 공부에 도움을 준다. 필요하다면 인접 학문의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나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등의 책들이 호기심을 채워가는 지식 쌓기가 인문 공부라고 잘못 생각하는 반면 강신주의 책은 다르다. 그는 "인문 소양 = 문사철 식견 + 인문정신" 임을 제대로 안다. 그의 책에는 문사철 식견과 인문정신이 하모니를 이룬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강조하는 인문정신은 정직함이고, <김수영을 위하여>에서는 '자유'를 노래했다. 

 

셋째, 그는 나를 포함한 대중에게 철학이라는 산맥의 좋은 가이드다. 그는 대중과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매개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공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좀 더 깊은 철학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문 고전이 중요하다는 강한 주장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공부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문사철 식견이 빈약해 보였던 <리딩으로 리드하라>와는 달랐다. 강신주는 구체적 지식을 알기 쉽게 전한다.

 

(지혜를 맛본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지혜의 세계를 누리는 사람들,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지혜를 전하는 사람들. 간단히, 현자, 대중, 전달자라고 해 두자. 전달자는 다시 두 분류로 나뉜다. 지혜의 세계에서 걸어나온 사람들과 지혜를 맛보지 못한 전달자. 후자는 종종 대중을 현혹할 뿐 그 세계를 보여주진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지혜를 쉽게 설명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

 

2.

(시간을 내지 못해 <힐링캠프>의 강신주를 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강신주가 2011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들은 게 있어 그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몇몇 주요 내용은 이렇다.)

 

- 민주주의가 되려면 개인들이 강해야 한다. 힐링과 위로를 전하는 작가들은 청춘을 착취하여 자기 책을 파는 사람들이다. 심각한 문제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감정적으로 파시즘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인다.) 

- 나는 단행본을 한걸음에 내달아 쓴다. 자료 조사 끝낸 경우라면 집필은 한달만에 끝낸다.

- 자기를 지배하는 자들은 타인을 지배하지 않는다. 

 

 

3.

시선집중 방송분을 들으면서, 강신주 읽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고 느꼈다.

 

1) 그의 자기 주장은 명쾌하여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주장을 검토조차 하지 않거나 종종 묵살해 버리기도 한다. 인문학이 고유 명사의 학문이라는 그의 평소의 주장을 생각할 때 아쉬운 대목이다. 예컨대, 이날 방송에서 청춘콘서트 등 젊은이들이 위로를 받으려는 현상을 굉장히 비판했다.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는 파시즘적 논리라는 데까지는 나는 동의한다. (파시즘, 표현이 세기 해도.)

 

그는 말한다. "그건 파시즘의 현상이에요. 사람을 왜 약하게 만들어요? 약하게 만들면 멘토를 찾거든요. 멘토가 생겨서 사람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위험한 현상이죠. 독일에서도 약해졌을 때 히틀러가 구원을 약속하면서 나타나거든요. 지성인과 지성인들이 일종의 착취예요. 설 수 있는 기회를 안 준다는 거."

 

(방송을 들으시면 알겠지만, 17분부터 20분까지) 그는 청춘 콘서트를 진행했던 안철수와 박경철까지 파시즘의 현상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여기까지는 그의 견해라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동감이 아니라 일정 기간동안 공감하는 정도랄까.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사유를 위해 공유하고 있겠다는 태도다.) 내가 불편했던 대목은 그의 강한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틀렸다고 말하는 태도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손석희가 묻는다. (20:05 부터 이어지는 대화다.)

"상당히 논쟁적인 말씀인데..." 라고 말하자, 강신주는 진행자의 말을 잘라 나선다.

"아니, 논쟁적인 말 아니예요. 이건 옳은 말이예요. 그냥."

"아니,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건 잘못된 생각이예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예요. 지적인 면이 딸리는 거예요."

 

옳은 게 옳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게 철학자의 역할이라는 말이 이어지나,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모든 말에 동의한다. 그의 말은 인문소양을 갖게 하고, 인생살이의 지혜를 잘 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모든 지혜를 전하는 것은 아니고,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신주가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2) 기대보다 그는, 경청의 능력이 빈약했다. 방송을 들어보니, 수없이 손석희의 말을 자르면서 말을 했다. 이를 테면, C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손석희가 A-B-C의 이야기로 풀어갈 때, 강신주는 질문을 다 듣지 않고 A에서 한 마디, B에서 한 마디씩 했다. 결국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서야 진행자는 본래의 질문 C를 되찾아 묻곤 했다. 인터뷰어 입장에선 장단점이 있겠다. 청취자 입장에서도 그럴 테고.

 

하지만 그를 당분간 삶의 선생으로 생각하며, 그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자신의 선생이 지성에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경청할 줄 알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지에 관심 갖게 마련이다. 강신주는 그런 점에선 아쉬웠다. (아마도 저날의 방송이 좀 더 그랬을지도 모르니, 아직까지 그의 경청 능력에 대한 판단은 유보다.) 사실 정확성을 추구하는 작가나 철학자가 말 꼬투리를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3) 그는 기질적으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노력을 해도 기질적으로 어려운 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방송에서 손석희가 "논쟁적인 발언인데..." 라고 두번을 말했다고 그때마다 그는 "논쟁적인 발언 아니예요"라고 잘라 말했다. 내가 봐도 논쟁적인데, 그건 듣는 사람의 생각인데 그것을 두고 아니라고 하니, 답답하긴 했다.

 

강신주 강연에서 자주 하는 (습관적인) 말은, "무슨 말인지 알죠?" "이해 되시죠?"다. 사고형의 사람들이 상대가 이해하건 말건 "너는 듣든지 말든지 나는 전한다" 식으로 선포하듯이 강연하는 반면, 감정형의 사람들은 상대가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설득하듯이 강연한다. 강신주는 후자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이 자주하는 말이 "이해됩니까?"다.

 

독자와 호흡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감수성은 강사로서는 강점이다. 하지만 균형을 갖추지 못한 강점에는 약점이 뒤따른다. 감정형의 약점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인정하기보다는 자꾸 설득하려 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청중이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느낀 강사들은 그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답답해하며, 진도를 멈추고 그것을 설득하는 일에 시간을 쓴다. 친절이 지나쳐서 지루함을 부르거나 자칫 억압이 되는 경우다. 강신주의 과잉 설명은 종종 상대를 억압한다.  

 

글을 마칩니다. 요컨대, 저는 '강신주 읽기'를 권한 겁니다. 그가 주장을 전하는 방식이 다소 직선적이고 때론 관용을 놓칠 때도 있더라고 덧붙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저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3번 글은 저자로서의 단점이 아니라, 강사와 스승으로서의 작은 흠일 뿐이니까요. <힐링캠프>에 대한 담론을 담았으면 더 시의적절한 포스팅일 텐데, 이것 또한 제 모습입니다. 항상 한발씩 느리게 가는 모습 말입니다. 얼리어답터는 못 되지요. 자기 자조가 아니라 명랑한 인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