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빠른 세월, 좋은 선물, 생일

카잔 2014. 2. 16. 01:55

 

1.

친구의 아이를 만나면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훌쩍 커버린 아이의 키가 세월의 흐름을 말하고, 아이들의 바뀐 학년은 내 나이를 헤아리게 만든다. 매년 진행되는 연례행사, 특히 내게 의미 있는 행사 소식을 접할 때에도 세월이 속도감이 실감난다. 내게는 우리 나라 대표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이상문학상이 그렇다.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수상자는 편해영이다.

 

'또 일년이 지났구나. 김영하가 수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라는 상투적인 감상에 잠겼던 것이 몇 주 전의 일이다. 지난 해의 수상작인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를 읽었을 때를 기억하며 세월이 참 빠르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김영하가 수상했던 연도는 2년 전이고, 지난 해 수상자는 김애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와! 2년이 1년처럼 지나갔구나...  

 

김애란의 수상을 몰랐던 게 아니다. 젊은 나이의 수상에 놀라기도 했었는데, 까맣게 잊었던 것. 김애란 수상을 떠올리자, 지난 해 그녀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두고 느꼈던 소회가 줄줄이 생각났다. 놀랐다. 잊고 있어서가 아니다. 기억은 이런 실수를 종종 한다. 

 

놀람은 김영하가 수상한 일이 2년 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세월아, 너 참 빠르구나.' 

 

2. 

만 서른 여섯 살이 되었다. 생경한 사실이다. 나이 인식은 항상 실제 나이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 (내가 이상적이라기보다는 세월이 다소 혹은 너무 빠르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한 살을 더 먹었다고 축하받는 일이, 나는 참 어색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축하란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인사"하는 것이란다. 나이 드는 것이 좋은 일인가? 내겐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20대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말하길, 나이 먹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 이뤄내고 성장했을 때 축하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도 있다.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에서 살지만, 생일 축하에 대해서는 저네들과 생각이 통할 것 같다. 뜻밖의 축하를 받으며, 내가 원하는 축하를 생각했다. 값비싼 선물? 물론 그것도 좋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물은 또 있다. 마음을 듬뿍 담은 메일, 나는 이 선물이 참 좋다. 

 

생활 필수품도 좋다. 고마움이나 잘 살아가라는 마음이 담은 필수품 말이다. 너무 무드가 없나? 하지만 난 케익보다 필수품이 좋다. 이를 테면, 부드러운 롤휴지, 양말세트, 견과류, 과일즙 등. 얼마든지 목록을 늘어놓을 수 있지만, 무드와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 자제했다. 나의 기호를 알아챈 선물도 좋다. 지금의 경우라면 <이상은 15집>이 되겠다. 혹은 재즈 앨범도 좋고. '김칫국, 잘도 마시는구나.'

 

3.

서른 여섯번째 생일날, 나는 이상은의 "삶은 여행"을 여러 번 들었다. 유투브에 등록된 여러 버전의 영상을 보면서 올해는 그녀의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텐데...) 내겐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곡이다. 내 영혼의 노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정도의 클래식한 음악 취향을 갖지는 못했지만, <삶의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소중하다. 

 

세상에 태어나 이제 서른 여섯번째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몽주는 나보다 한 해 적은 나이에 명나라를 밟았다. 지밀직사사 홍사범의 서장관으로 동행한 것. 1372년 3월의 일이다. 단번에 명나라 주원장의 신뢰를 얻고, 원임재상 '유기'의 배려를 듬뿍 받을 만큼 학식과 덕이 뛰어났던 정몽주였다.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활동했던 시인 고계의 시에 탄복하기도 했다.

 

"당대가 이두로 인하여 찬란했듯이 대명은 청구자로 인하여 광휘를 더할 것을 알았소."

 

이두는 이백과 두보를 말함일 테고, 청구자는 고계의 호다. 나는 정몽주의 말에 감동했다. 삼십 대 중반에 나라의 부름으로 사신을 떠난 일과 역사가 아직 평가하지 않은 당대의 시인을 이백과 두보에 비견할 만큼의 식견을 가진 것에 감탄해서다. 최고의 충과 효 그리고 학식을 갖춘 선생과 나를 감히 비교하겠냐마는, 서른 여섯의 내 삶이 젊은 날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질까 경계심이 드는 생일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