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을 땐 그 어려움을 얕보기 쉽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회의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거 없이도 낙관하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의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두고 볼 일이지만, 아마도 너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너도 그리 생각한다면,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게다.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환영회장에서 사장님이 강연하셨을 때의 일이다. 사장님은 시시한 훈화 말씀이 아닌 사회 생활에 요긴하게 쓰일 멋진 강연을 하셨다. 내용 중의 일부를 전한다. (내 언어로 각색됐지만 요지는 그대로다.)

 

"여러분, 저는 한 신입사원의 말을 듣고서 매우 흐뭇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의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열정적으로 일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로부터 젊음의 열정이 전해져 감동했지요.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신입사원은 이리 말하더군요. '저는 일과 삶의 균형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근무 시간이 마치면 칼퇴근하여 여가도 즐기고 가정에도 시간을 듬뿍 줄 겁니다.' 제가 당황한 까닭은, 20~30대에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고서 세계 최고가 된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 서른아,

사장님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을 터이니 내가 이해한 견해를 덧붙여 보마. 

 

1) 현실을 직시한다는 말은,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치러할 대가를 아는 것이다. 세계 최고가 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직업 세계에서의 최고는 젊은 날의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다. 중년 이후의 어른들이 너무 넘겨짚는 과오를 범하듯이, 이십 대의 젊음은 분별이 모자라 현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과오를 범한다. 너는 피해가기를 바란다.

 

2) 내가 이십대였을 때,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고서 고무된 적이 있다. 그들은 일주일 중 이틀을 일하고, 이틀은 공부했다. 그리고 삼일은 가족과 함께 지냈다. 나도 그런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들 대부분이 40대 이후에야 그런 삶을 영위했음을. 20대엔 일에 모든 것을 투자했음을! 나의 이십대는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과실의 달콤함에만 눈독을 들였던 시절이었다. 그것도 매우 빨리 과실맛을 보기를 바랐다. 

 

3) 각 연령대마다 핵심 과업과 주요 문제의식이 있다. 그것을 인식하여 거기에 몰두해야 한다. 이십 대의 핵심 과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고, 삼십 대는 삶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저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연령대마다의 문제의식이 된다. 삼십 대엔 삶의 균형을 놓치기 쉽다. 균형은 불가능한, 하지만 도전해야 하는 과업인 셈이다.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올린 시시포스처럼 삶의 균형이 달성불가능하게 보여도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직업적 목표가 업계 최고라면, 당분간은 삶의 균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삶에서 어떤 대가를 불러오는지도 감안해야 하고. 요컨대, 직업적 욕심이 클수록 삶의 균형을 달성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편지를 맺기 전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몇 문장으로 정리해야겠다. 삶의 중요한 문제들은 대개 서로 다른 양극단을 조화시키는 일이기에 명료하게 표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와 실천을 위해서는 간단한 표현에 도전해야 한다.

 

그대 서른아,

- 허공에 꿈을 세워도 좋다. 다만 땅에 닿을 만한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 세계 최고가 되는 데에는 세계 최고의 노력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 대가를 치르기 싫으면 욕심을 낮추는 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다.

- 직업적 목표와 삶의 균형 맞추기는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 균형은 시간의 양이 아닌 질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게임, 카톡, 잡담 등 소모되는 시간을 최대로 줄여 의미있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 체력, 사람들에 대한 관심, 삶의 열정을 높이는 것도 삶의 균형을 돕는다.

- 인생을 긴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젊은 날에는 일에의 몰입 자체가 균형이다.

 

 

현실적 이상주의가 중요하다. 빛만 아는 이들은 어둠이 찾아오면 빛을 꺼뜨린다. 하지만 어둠을 아는 빛은 어둠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때론 더욱 밝아지기도 한다. 현실을 아는 이상주의자가 되어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알아야 한다. 이 편지를 네 이상을 낮추라는 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인식 없이는 이상의 실현이 쉽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세상에 어둠이 찾아와도 인간은 불빛으로 자연을 극복했음을 기억하시게. 밤이 되어도 밝게 빛나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 그 능력을 너도 가졌음을 잊지 마라. 하지만 자연은 인간 문명을 뒤덮을 힘을 지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 힘을 쓰면 인간의 운명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자연은 인간이 오만해지기전까지는 우리의 능력을 허용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 관대함 속에서 한껏 네 능력을 꽃피워가기를!

 

그대 서른아,

꿈의 실현을 쉽게 여기는 네게 이 글을 보내는 까닭은 '어려우니 꿈도 꾸지 마시게'가 아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만 이룰 것이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다. 각오하고 예상해야 뜻밖의 장애물을 좀 더 쉽게 넘어설 테니까.

 

미리 겁먹지도 말고 어려움을 미리 속단하지도 마시게. 내일의 장애물을 오늘 넘을 수는 없다. 그러니 여유롭게 전진하자. 어려움이 닥치면 울상과 불평 대신 웃으며 맞이하자. 꿈의 여정에 어울리는 태도는 비장함보다는 유쾌한 단호함이니까.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