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의미와 경외심을 회복시키는 기예

카잔 2014. 4. 3. 08:30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가장 감동했던 대목은 1) 허무주의 시대에 대한 처방을 문학 작품 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사실과 2) 테크놀로지 시대에 대항하여 의미 심장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기예를 연마하라는 제안이었다. 3) 책의 주제에 줄곧 현상학적 방식으로 접근한 것도 이 책을 신뢰하게 했다.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최선의 추구'라면 보다 현실적인 '최악의 제거'를 선호한다. 4) 참된 확신은 내면에서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 이끌리듯 경험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인상 깊었다. 5) 서로 다른 양극단의 가치, 인간 삶에 필요한 배타적인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저자들의 지성도 빛났다.


저자들이 이야기한 '기예'는 장인적 기술을 말한다. 기예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한다. 누구나 그런 '일상적인 기예' 서너 가지를 가졌을 것이다. 나는 소로부빵 맛의 차이를 기막히게 알아챈다. 책은 1~2분만 들여다보고서도 양서를 골라낼 때가 많다. 조금씩 좋은 와인 향도 알아가는 중이다. 기예는 의미 있는 차이를 구별하여 경외심을 회복시킨다. 

 

우월감이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기예를 연마하는 것, 현대인에겐 중요한 삶의 기술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의 기예라면 사양하게다는 말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음식 맛이 별로네요. 샐러드가 싱싱하지 않아요. 샐러드는 OO 호텔 뷔페가 최고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현재로의 몰입과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런던 정경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인 리차드 세넷의 『장인』은 기예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숙고를 돕는 책이다. "손으로 만드는 일이 곧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기예가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지를 살핀 책이다. 다음의 몇 구절을 읽는 것으로도 글의 서두부터 언급한 '장인적 기예'에 대한 감을 잡으실 것이다.

 

"장인이라고 하면 곧바로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창문 너머로 목수의 작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이 든 사람이 보이고 그 주위로 견습하는 도제들과 작업도구들이 보인다. 질서정연한 실내에는 의자 부품들이 죔쇠로 나란히 고정되어 있고 나무 깎는 생생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목수는 작업대에 몸을 기울여 상감(象嵌) 세공에 쓸 정밀한 칼집을 내고 있다. 지금 이 작업장은 길 아래쪽 가구 공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43쪽) 테크놀로지는 편리함을 주지만, 장인적 기예를 사라지게 한다는 문제의식은 『모든 것은 빛난다』와도 연결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어느 실험실에서도 장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의 젊은 실험실 조교는 탁자 옆에서 눈썹을 치켜뜬 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죽은 토끼 여섯 마리가 절개된 복부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그녀가 양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토끼들에게 주사를 놓은 뒤로 뭔가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실험 절차를 잘못 수행했는지, 아니면 실험 절차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알아내려고 고민 중이다.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실제적인 일에 임하여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44쪽에서 발췌)

"작업장(workshop)은 장인이 생활하는 집이다. 말 그대로 작업장의 전통은 그랬다. 중세 장인들은 그들이 일하는 곳에서 먹고 자고 아이들을 길렀다.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기도 했던 작업장은 규모가 작아서 한 곳당 기껏해야 열댓 명 정도가 기거했다. 근대 이후의 공장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일하는 공간이지만, 중세의 작업장은 이런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 19세기에 난생처음으로 산업화 광경을 목격한 사회주의자들의 눈에 일터이자 집이었던 작업장이 낭만적으로 비쳤던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클로드 생시몽(Claude Saint?Simon)은 모두 작업장을 인간의 정감이 흐르는 노동공간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또 이 공간에서 인간이 머물 훌륭한 집을 봤던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 일과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공간으로 보였을 법하다." (95쪽)

작업장(workshop)은 현대의 교육산업에서 교육의 한 형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특강 그리고 워크숍! 수십, 수백 심지어는 천명 이상의 청중이 참여하는 특강과는 달리 워크숍은 10~20명의 청중과 함께 참여 중심의 교육을 진행하는 형태다. 많아야 30명 내외이니 지적 교류 뿐만 아니라 인간적 교류가 가능할 때도 많다. 일년에 두어 차례 <강의력>을 주제로 한 강좌를 여는데, 중세의 작업장 이야기를 슬쩍 언급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