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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선생의 독서론

카잔 2014. 5. 20. 12:03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라야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뚜렷하게 깨달아 진보해 나갈 수 있다. 이치를 궁리하려면 글을 읽어야 한다."

 

『격몽요결』의 제4장 독서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기대한 장이지만, 오히려 감동은 뒤이어 나오는 효나 상을 당했을 때의 규례에 대한 내용보다는 감동이 덜했습니다. 독서에 대한 율곡 선생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기도 하나, 얼마 전 유학의 예(禮)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낀 바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독서에 대한 중요 내용을 정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모아 정밀하게 생각하고, 오래 읽어 그 행할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 글의 의미와 뜻을 깊이 터득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자기가 실천할 방법을 구해 본다. 이렇게 하지 않고 입으로만 글을 읽을 뿐 자기 마음으로는 이를 본받지 않고, 또 몸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읽고 나는 나대로 따로 있을 뿐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독서는 학문 습득의 수단이기에 앞서 자기 수양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독서 수양론은 도학(성리학의 별칭)의 기본이념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독서는 지식의 함양이자 나를 수양하는 길이었습니다. (책이라도 읽었기에, 그나마 겨우 이런 삶이라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군대에서 <수양록>을 쓰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율곡 선생은 수양으로서의 독서를 강조한 후, 오서와 오경을 읽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사서삼경에서 『소학』, 『예경』, 『춘추』를 더한 것입니다. 좀 길지만, 혹 동양의 유학 고전들을 읽으시려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이 대목은 전문 그대로 옮겨 두겠습니다.

 

"먼저 『소학』을 읽어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형을 공경하는것,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는 것, 어른을 공경하는 것, 스승을 높이 받드는 것, 친구와 친하는 도리 등을 일일이 배워서 힘써 행한다.

 

다음으로 『대학』을 읽어 이치를 궁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 등을 일일이 참되게 알아서 이를 실천한다.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어진 것을 구하여 자기 몸을 위하는 것과 근본된 성품을 길러나가는 공을 일일이 정밀하게 생각해서 깊이 그것을 체험한다.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利)를 분별하고, 사람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에 관한 학설을 일일이 밝게 살펴 이를 확대하여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나간다.

 

다음으로 『중용』을 읽어 성정의 덕과 옳은 길로 미루어 나가는 공과 만물이 육성되는 묘한 이치를 일일이 알아서 여기에 얻는 것이 있게 한다."

 

여기까지가 오서(五書)입니다. 『소학』을 덧붙인 것이 무척 반갑습니다. 학문보다 먼저 일상 생활에서의 도(道)와 예(禮)를 익히고 싶거든요. 조광조, 이언적, 정여창, 이황과 함께 성리학의 '동방오현'으로 불렸던 김굉필 선생은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하며 『소학』에 심취했더군요. 율곡 선생은 성리학의 토착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데, 『격몽요결』과 『성학십도』가 『소학』과 『대학』에 비견되는 저서입니다.

 

"다음으로 『시경』을 읽어서 성정의 바른 것과 착한 것을 권장하고 악한 것을 경계하는 일들을 일일이 조용히 해석해서 마음 속에 저절로 감동되어 이로써 행동에 옮겨나간다.

 

다음으로 『예경』을 읽어서 하늘의 이치가 규정된 글과 행하는 규칙의 법도를 일일이 강구해서 마음 속에 세운다.

 

다음으로 『서경』을 읽어 요 순 임금과 우왕, 탕왕, 문왕, 우왕이 천하를 다스린 원리 원칙을 일일이 터득하여 그 근본을 거슬러 생각한다.

 

다음으로 『역경』을 읽어서 사람의 길흉, 존망, 진퇴, 성쇠의 기미를 일일이 보아서 궁리하고 연구한다.

 

다음으로 『춘추』를 읽어서 성인들이 착한 이를 상 주고 악한 이를 벌한 것이며, 잘못하는 일을 억제하고 잘하는 일을 드날려 준 것과, 모든 일을 조종하는 그 자세한 말과 깊은 뜻들을 일일이 정밀하게 연구해서 크게 깨닫는다."

 

독서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선생은 조바심을 경계하며 한 권씩 제대로 독파하라는 권합니다.

 

"글을 읽는 데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익히 읽어서 그 의리와 뜻을 모두 깨달아 모두 통달하고 의심이 없이 된 후에라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것이고, 여러 가지 책을 탐내서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바쁘고 분주하게 섭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