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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은혜를 어찌 하리요?

카잔 2014. 5. 21. 20:31

 

『격몽요결』의 5장 사친(事親)은 부모님을 향한 효를 다룬 장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효를 행하는 이는 드뭅니다. 그 까닭에 대해 율곡 선생은 “자기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합니다.

 

잘 알지 못하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잘 알고 나면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지고요. 깊이 안다는 것(深知)은 중요합니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도 명확한 앎이 곧 삶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었지요.

 

“천하의 모든 물건은 내 몸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준 것이다. … 부모가 나에게 이 몸을 주셨으니 천하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준다 해도 이 몸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 율곡

 

부모가 몸을 주셨으니 그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데,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더군요. ‘모든 부모가 귀한 선물을 준비하듯이 자녀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녀는 무분별한 부모들의 욕정의 산물이다. 마지못해 키우는 부모도 있다. 키우면서 선한 마음이 생겨 훌륭히 교육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첫 마음과 별개의 문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살펴보니, 부모 자식 관계를 천륜이라 여겼던 유자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부모의 은혜를 어찌 하리요. 어찌 감히 내가 나대로 몸뚱이를 가졌다 해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 않으리오.” 율곡 선생은 이리도 효를 당연지사라 여기지만, 범인들의 마음에도 효심이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아니면, 저만 불효한 걸까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지, 효를 간과하며 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안에 효(孝)와 제(悌)의 마음이 가득해지기를 바랍니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이는 다른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천륜이라는 부모와의 관계를 저버리는 이들은 다른 관계도 이익이 다하면 저버릴 거라는 생각도요. 나는 은혜를 알고, 관계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안에 효심을 일깨우기 위해 6장 상제(喪制)장과 7장 제례(祭禮)장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부모상을 당했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 제사를 지낼 때의 예는 무엇인지를 다룬 장입니다. 물론 조선 시대의 예법을 지금 모두 실천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예를 다하는 그 정성과 마음만큼은 따오고 싶습니다.

 

“증자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스스로 정성을 다했다고 하는 자는 없을 것이니 이것은 반드시 그 부모가 죽었을 때의 일이다.’ 과연 부모가 죽어서 장사지내는 일은 실로 부모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서 자기의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어디에다 그 정성을 쓰겠는가?” - 『격몽요결』 상제장 中

 

지인이 부모상을 당하면 나는 이런 문자를 보냅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성을 다하여 보내드리세요. 장사를 치르고 나면, 그 정성으로 삶을 살아가세요. 고인께서 바라시는 것도 당신의 빛나는 삶을 테니까요.” 이 순간만큼은 증자의 마음에 가 닿은 것 같아 책을 읽으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제사를 지낼 때는 산재를 2일 동안 하고, 치재를 하루 동안 한다. 산재란 무엇인가? 남의 초상집에 가서 조상하지 않고, 남의 병을 묻지도 않고, 마늘을 먹지 않고, 술을 마셔 어지러운 데 이르지 않고,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치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난잡한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않으며, 마음을 오직 제사 지낼 일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직 그분이 거처하던 일만 생각하고, 그분이 하던 우스운 말을 생각하고, 그분의 즐겁던 일을 생각하고, 그분이 좋아하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제사 때 그 분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 듯하며, 그 분의 목소리를 귓가에 듣는 것처럼 되어 정성이 나타나고 신이 와서 흠향하게 된다.” 『격몽요결』 제례장 中

 

나는 제례장에서 크게 감동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22년 세월이 한스러울 만큼 무릎을 쳤습니다. 이런 태도로 기제사를 지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더군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율곡 선생께 배운 마음으로 어머니와 구 선생님의 기일을 맞이하겠다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을 타고 납니다. ‘선한 의지’로 그 본성을 거슬러 아름답게 살고자 하지만, 본성은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지를 유혹하고 자주 무너뜨립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떻게 착한 마음을 북돋울 것인가?

 

어딘 가로부터 착하고 경건한 마음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기도를 통해, 어떤 이는 경전 독서를 통해 그런 마음을 되살립니다. 우리 선조들은 사당을 지어 신주를 모심으로 타인을 향한 마음을 키워냈고요. 현대인인 제가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실 수는 없지요.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를 깊이 생각하고 지금의 부모님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은 얼마든지 더할 수가 있을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부모가 길러준 은혜를 입고서도 자기 힘으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 만일 이렇게 그대로 세월을 지내면 끝내 충성되게 부모를 봉양할 시기가 없을 것이다.” - 율곡

 

봉양은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살 길이 막막한 노부모라면 부양의 의무를 다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온 마음을 다해 부모님을 봉양하려는 태도부터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