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아직 나는 실감이 안 난다

카잔 2014. 7. 1. 23:59

 

 

1.

7시에 눈을 떴다. 숙모는 어젯밤부터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시는 눈치다.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집에서 해야 할 것 같아 둘러가는 동선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갔다. 피곤한 내게는 밥보다 잠이 필요했지만, 숙모의 애정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집에 가서 밥상을 받으니 ‘잘 왔구나’ 싶었다. 나를 위해 몇 가지 반찬을 마련하신 것.

 

난 숙모가 좋다. (요즘 나답지 않게, 다시 말해 연락을 좀처럼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이겨내며 매주 연락을 해서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숙모를 생각하면... 효도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고,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올해 안으로 용돈 100만원을 안겨 드리겠다는 바람은 꼭 실천해야겠다.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 성경, 마태복음 6:21

 

이리 말하면, 돈이 나의 보물이 되는 건가. 그렇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돈을 좋아하니까. 돈보다 더욱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지, 나는 돈을 좋아한다. 돈만 좋아하면 속물이 되기 쉽지만 돈과 더불어 배려, 사랑, 용기, 자유 등의 아름다운 가치를 좋아하면 돈을 선용할 것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 동기가 가장 강해질 때는 가족이나 친구를 돕고 싶을 때다.

 

2.

숙모가 출근하신 후 한 두 시간을 더 자려고 누웠다. 정오 즈음 병원에 가려는 생각이었다. 누웠지만 잠들지는 못했다. 눈이 아팠다. 어제, 오른쪽 눈에 느껴졌던 이물감이 이제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고 잠들지 못할 만큼 아팠다. 몸을 일으켰다. 검색해 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과가 있었다. 들어서면서 안과의 큰 규모에 놀랐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그저께 일요일부터요.

“눈곱은 안 끼셨어요?” 네.

“눈이 붓지도 않았고요.” 네.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보니 지금도 부었는데요. (간호사를 돌아보며) 오른쪽 부었죠?”

 

간호사가 소리 없이 웃으며 “네” 했다. 왠지 쑥스러웠다. “제가 거울을 잘 안 봐서...” 끝을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병원을 나서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거울삼아 들여다보니 눈이 붓긴 했다. “눈병입니다. 2주 정도는 고생하셔야 할 거예요.” 손에 든 처방전을 약국에 전달하니, 약을 내주었다. 약국을 나서며 생각했다. ‘왜 하필 지금이람?’

 

여유로울 때라고 해서 눈병이 반갑기는 않겠지만,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쉼 없이 눈물이 흘렀다. 슬픔은 일을 모두 치르고서 느끼기로 다짐했는데, 마음은 자신을 달래주지 않는 주인이 서운했나 보다. 아예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눈물을 흘리려고 작정을 한 걸까. 집으로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을 나섰다. 잠자기는 틀렸으니 병원이나 가야지.

 

피곤했지만, 요즘 들고 다니는 책갈피에 쓰인 문구가 떠올렸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지지 않기를!”

 

3.

병원에 갔더니 친구 형과 누나가 계셨다. 20년 전부터 알아왔던 분들이니 반갑다. 슬픔을 품고 있겠지만 모두들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침통함이 비극을 덜어내지는 못함을 아는 듯이, 우리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정말 반가웠다. 누나는 보니, 이십 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가 떠오른다.

 

그때 우리 학교는 10시에 자율학습이 끝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에 가고 소수는 학교에 남아 공부를 이어갔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12시까지 개방되었다. 친구와 나는 남는 쪽이었다.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고, 나는 자주 친구를 피해 다녔다. 다른 교실에 숨어 잠을 자는 식이었다. 아! 아련한 추억... 그 녀석이 지금 의식을 잃은 채 내 앞에 누워 있다.

 

11시 50분 즈음, 우리는 학교를 나섰다. 교문 앞에는 친구 누나가 자가용 안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는 시각이 대개 자정을 갓 넘긴 시각이었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새로운 날을 매일 함께 맞았다. 병실에서 오랜만에 누나를 보니, 이십 년 전 운전석에 앉아 있던 누나에게 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누나가 가시고 형도 가셨다. 누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각에 맞춰, 형은 아마도 사업장에 가야 하는 시각에 맞췄을 것이다. 좀 더 일찍 나섰으면 여유로울 텐데, 병원을 늦게 나서는 바람에 서둘렀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아산병원을 나와서는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이동하곤 했다. 병원은 그렇게 항상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아직 나는 실감이 안 난다.” 형이 가시는 길에 병원 현관까지 배웅해 드렸을 때, 하신 말이다. 동생과의 사별이 어찌 벌써 실감이 나실까. “지금이야 생각할 겨를도 없고, 준비해야 할 일도 많으니 더욱 그러시겠죠. 나중에 일을 다 치르고 나면, 밥 먹다가 문득 슬픔에 잠기거나 세수하거나 갑자기 울음이 터지거나 할지도 모르죠.” 작년에 내가 그랬다.

 

* 이 포스팅은 날짜만 저장해 두고, 7월 3일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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