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뜻밖이라고 당황하지 말고

카잔 2014. 6. 29. 19:10

 

1.

아뿔싸!


여느 때 같으면, 이 시각에 이동할 리가 없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각없이 나섰다가, 정체에 걸리고 말았다. 서울과 양평을 오갈려면 6번 국도 경강로를 거쳐야 한다. 주말 교통량이 많은 도로다. 토요일엔 양평 방면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 특히 하남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경강로에 진입하는 구간의 정체가 심하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서울 방면이 막히기 시작해 저녁 시간이 지나야 뚫린다.


일요일 오후 4시 30분이면 서울 방면 경강로가 한창 막히는 시간대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나, 잠실 사무실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급한 마음에 하루 일정을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미리 출발했거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하고서 좀 늦게 출발했어야 했다. 차를 세워 실시간 도로 검색을 했더니 소요 시간이 여느 때보다 2.5배 이상이다. 고민하느라 잠깐의 시간을 낭비하다 카페에 들렀다. 


"이동할 때에는 한발 앞서 움직여라." 항상 잘 지키던 교훈을 순간적으로 놓쳤다. 주말에 경강로를 탈 때에도,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탈 때에도 지키려 노력하는 금언이다. 테헤란로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아침 시간대 별로 지하철 2호선에 탄 사람들을 관찰한다면, 자신의 출근 시간을 재고하지 않을까? 8시와 7시는 많이 다르다 6시 30분이면 완전 다르다. 어떤 30분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엄청 절약해 준다.



2.

여유가 그립다. 한가로운 주말이고, 남한강이 내다보이는 양평의 어느 카페에 있지만, 마음이 분주하다. 여유를 만드는 최종 공정은 마음에서 이뤄진다. 시간과 공간이 여유를 선사해도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여유는 사라진다. 시공간이 분주해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본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잔잔한 호숫가에서도 분주함 속을 떠돈다. 마음에 달린 일이니, 나는 마음에게 호령한다.  


뜻밖의 시간일지라도 여유를 누려라!

인생을 어디 네 뜻으로 얻었더냐.

어느 날 문득,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던가.


뜻밖이라고 당황하지 말고,

뜻대로 안 된다고 절망하지 말고,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아라.

 

강은 바람의 변덕에 잔 물결로 화답하여

빛의 축제를 펼친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흐르고 흘러 제 갈 길을 간다.



3.

이디스 그로스먼은 탁월한 번역가다. 그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번역했는데, 마르케스는 자신의 원작보다 낫다고 극찬을 보냈단다.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다. 4월에 사망했지만, 국내에선 세월호 침몰로 뉴스가 묻혔다.) 그로스먼의『돈키호테』 번역본도 매우 훌륭한 번역본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다. 그녀는 『번역 예찬』이란 책에서,


"진지한 전업 번역가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때, 달리 어떤 생각이 들건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대개는 남몰래 그런 생각을 하지요. 저는 또한 번역가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다고 믿습니다. (중략) 번역가가 하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글을 쓴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고쳐 쓰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썼다.


모범적인 번역은 직역과는 차원이 다르며, '어휘의 짝짓기'가 아닌 문맥에 대한 이해로 이뤄진다. 이는 두 언어의 표현 양식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을 가져야 가능하다. 여기서 이런 번역론을 펼칠 생각은 없다. 그로스먼의 번역가론을 읽으니 나의 자의식이 떠올랐다. 곰곰히 생각해볼 때,


나는 작가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홀로 선언하는 것으로 얻는 게 아니라, 세간의 평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리라. 나는 작가로 살고 싶다. 지금껏 출간된 책이 졸작이라, 남몰래 그런 생각을 한다. 작가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자주 하는 일이 글쓰기이고, (그로스먼의 고쳐 쓰기와는 다르지만) 나 역시 자주 고쳐 쓰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쳐쓰기는 번역이고, 나의 경우는 퇴고다.)   


뜻밖의 시간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썼다.

우리의 인생은 자신이 먹는 것과 행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뜻밖의 시간에도 먹거리와 행동거지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