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어떤 퇴원은 고통 어린 슬픔이다

카잔 2014. 6. 20. 17:10


오늘 친구가 아산병원을 떠났다. 고향인 대구로 간다. 건강하게 퇴원하여 집으로 가는 것이면 더없이 좋으련만, 녀석은 상황이 악화되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 형의 차를 타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다. 1층 로비 접수대 앞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멍했다. 지나간 3주 동안의 병원 생활이 스쳐지나갔다.

 

퇴원하는 과정도 떠올랐다. 친구는 건강을 회복하여 웃으며 걸어 나가는 게 아니라,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녀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착잡함에 두려움과 절망이 버무러진 어떠한 느낌일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휠체어를 밀고 가던 나는 간호대 앞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친구가 나를 세우더니, 간호사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간호사들이 밝게 인사했지만, 내 마음은 밝지 않았다.


친구 가족이 떠나고 나는 다시 친구가 있던 병동으로 올라갔다. 휠체어도 갖다 놓고, 병실을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담당 간호사를 만나면 고마움도 전하고. (녀석이 인사할 때 함께 인사 못한 게 아쉬웠다.) 10~20분이 흘렀을까 싶은데, 친구가 머물렀던 병실에는 벌써 다른 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이름표를 잠시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친구가 사라진 느낌이 들어, 얼른 그 느낌을 떨쳐냈다.


나는 친구를 중심으로 병원을 바라보지만, 병원은 병원대로의 일상이 진행됐다.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했다. 바뀐 이름이 왠지 모르게 야속했지만 병원 일상에 대해 이해가 되어서인지, '이게 병원이구나, 이것이 삶이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속함이 정당한 감정이라고 해도, 그것은 병원이 아닌 삶을 향한 것이어야 했다. 나는 친구 와이프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복도에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섰다.  


'정말 호스피스 병동으로 갔구나. 거기선 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까?' 걱정되고 슬펐다. 두려울 만도 한데, 현실감이 없어서인지 착잡하고 쓸쓸했다. 문득, 다음 주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내가 울까?' 문득 이십 년 전의 어느 날을 떠올랐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장례식에서 나는 엄청 울었다. 함께 독서실을 다녔던 친구였다. 얼굴은 눈에 선하나, 삶을 살며 자주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했지만 절친은 아니었다.


반면 이 놈은 다르다.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 사이다. 지난 해 선생님과의 사별 후, 나는 오랫동안 슬펐다. 세수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불쑥 불쑥 울음이 터졌었다. 또 다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모를 일이라고 상황을 부정한다. 아직도 나는 현실감이 없다. 하지만 멀리 고향에 있는 친구들보다 친구 와이프나 내가 현실적인 준비를 해 온 것도 사실이다. 매일 친구의 상태를 보고, 들으니까.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친구야, 뭐가 제일 걱정이냐?" 다른 질문들과는 달리,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내가 죽고 난 후의 가족들 삶이지." "짜식아, 지금 니가 아픈 거는?" 대화는 이렇게 뚝 끊겼다. 녀석이 울었기 때문이다. 오래 울지도 못한다. 울면 통증이 심해지니까. 복받쳐 온 감정에 잠시 울음으로 응대한 것 뿐이었다. 통증과 울음이 범벅이 되어 녀석의 몸이 들썩인다. 보는 이에게도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글이 끝없이 이어지겠다. 3주 동안 많이 답답해서일까,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일까, 쓸 말이 콸콸콸 쏟아지는 느낌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내일부터 중요한 1박 2일 MT가 있다. 2기 유니컨의 마지막 수업일이다. 2년 간의 대장정을 마치는 날이다. MT가 끝나고 나면, 바로 대구로 달려가 면회를 갈 참이다. 면회가기조차 두렵다. 몇 번의 만남이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면회올 때마다 들었다.


서둘러 글을 맺는다. 나는 20분 즈음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섰다.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소식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고서 일어섰다. (친구의 상황을 이곳저곳으로 공유해야 해서 카톡 쓰는 것도 때론 일이다.)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식사를 해야 힘이 날 테고, 움직이면 힘이 생기리라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잤다. 20분 만에 깨었지만 몸이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