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열심으로 살았던 어느 하루

카잔 2014. 6. 19. 01:05

 

12시 취침은 일상경영의 원칙 중 하나다. 렉티오 리딩 강연을 마치고 귀가한 11시 45분. 얼른 씻고 자면 원칙을 사수할 수 있는데, 고민했다. 원칙을 지켜 동그라미 하나를 채울까, 아니면 동그라미 하나를 포기하고 일을 할까? 후자를 택했다. 일이 좀 밀리기도 했거니와 오늘을 기록하고 싶기도 해서다. 이런저런 단상들과 주고 받은 연락들(문자 메시지) 그리고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1.

일상경영의 나머지 원칙을 궁금해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그것부터 적어둔다. 매일 행하려고 애쓰는 7가지 일들이다. 글을 썼는가, 와우들과 소통했는가, 지식을 습득했나, 운동했는가, 건강 3식을 먹었나, 21시 이후 금식했는가 그리고 24시 전으로 잠자리에 들었는가.


2.

아침,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러시아가 한국을 상대로 8:0으로 승리한, 기분 나쁜 꿈이었다. 어찌나 생생했든지 눈을 뜨고서도 절망스러웠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고 얼른 TV를 켜니 0:0으로 전반전 막바지가 진행되고 있었다. 휴, 한숨을 쉬었다.


KBS 중계를 보았다. 이제는 해설위원이 된 이영표는 경기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작은 장면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영민함을 보였다. 러시아 골키퍼는 구자철, 기성용의 유효 슛팅을 잡아내지 못하고 자기 앞에 떨어뜨렸다. 이에 대해 이영표는, 골기퍼가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며 중거리슛을 쏘기를 권하며 다른 공격수들이 흘러나오는 공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멋진 지적이었다. 이후 김헌곤의 슛팅도 흘러나왔고, 러시아 골키퍼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이근호의 슛팅을 흘려 실점을 했다. 이영표의 해설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감동이 깊진 않았다.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를 예닐곱 번 반복하며 자신의 맞아떨어진 예측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깊이 있는 해설에 비하면 아쉬운 대목이었다. 본인이 드러내지 않아도 많은 국민들이 이미 감탄하는 중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천하가 감탄하는 일을 지나치게 선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별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취향이나 성향에 치우친 견해일 테니까.

 

3.

글도 써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병원에도 가야 하고 저녁에는 강연도 있고. 일정도 할 일도 많은 하루였다. 오늘만 특별히 바빴던 것은 아니다. 요즘엔 대개 이렇다. 그래도 일상경영 최후의 보루, 글쓰기 만큼은 지켜내려고 애쓴다. 이것마저 놓치면 병원 가는 일에 지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문자가 왔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본이 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성실히 사는 요즘이다. 프로야구도 잘 안 보고 시간을 쪼개며 산다. 이를 어찌 알았을까, 문자를 보낸 타이밍이 좋다. 내가 항상 이리 사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내게 배우기를 즐기는 이라 좀 자세히 회신 문자를 보냈다. 선생으로서 배움의 타이밍이라 여겼던 것. (자극이라도 되기를!)


"문자 고맙다. 요즘 정말 시간 쪼개며 산다. 강연도 준비해야 하고, 야구도 봐야 하고, 게다가 월드컵까지. ^^ 메일 회신 등 일상적 업무도 있고. 가족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다해야 하고. 문안 인사나 안부 연락 등 말야. 친구 병문안도 가야 하고. (보름 째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에 다녀왔다. 종일 강연이 있던 삼일을 제외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핸드폰으로 보내어 지하철에서 처리하기도 하는 요즘이네.


글쓰기는 때로 건너뛰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생각한다. 유니컨들에게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도 나처럼 힘들지 않을까? 아내와 애기 둘을 위해 애쓰는 가장도 있고, 집안에서도 회사에서도 사느라 시간이 부족한 이들도 있거든. 행여 그들에게 열심을 당부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 나부터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요즘 운동이 늘 밀려나네. 못한 지가 오래다.)"


4.

오후엔 병원에 갔다. 저녁 강연이 있어 부담스러운 날이었지만 매일 최소한 한 시간은 들르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물론 몸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머물러야 한다. 매일 친구랑 만나다 보니 별 생각없이 가면, 형식적 문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갔다. 오늘 꼭 해야 할 말들, 궁금한 것들, 하룻동안 내가 생각한 것들 중 나눠야 할 것들을.


병원에 머물렀던 두 시간 내내, 친구는 깨어 있었다. 늘 잠자는 시간이 훨씬 많은지라, 드문 경우였다. 덕분에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5시 30분이 되니 한 시간 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강연이 취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다. 4년째 매달 강연을 해 왔지만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구가 깨어 있으니 계속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던 것.


마음이 병원에 있다보니,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얼른 가라는 친구와 재수씨의 채근에 병실을 나온 시각이 6시 42분! 늦을 수도 있는 시각이었다. 잠실나루역까지 서둘러 달렸다. 땀을 내긴 싫지만 늦을 순 없었다. 다행히도 난 기동력이 좋았다. 4분 전 강연장에 도착! 첫 강연을 하는 곳이라면 어림도 없지만, 오늘 강연은 쭉 해오던 곳이라, 별탈 없이 준비를 마치고 정시에 강연을 시작했다. 


6.

집으로 오는 길, 낮에 보냈던 문자에 대한 회신이 왔다. 문자의 요지는 "선생님의 반 정도만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어요"였다. 떠오른 생각으로 회신했다. 괜한 열심을 내느라 잠을 줄이거나 과도하게 무리할까 싶어 보낸 회신이었다. 그의 평소 시간 활용을 알았던 덕분도 있었다.


"열심의 확대도 좋지만, 낭비의 제거도 멋진 일이다.

특히 낭비를 그대로 두면서 열심을 생각하지 않도록 의식하시게."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는 낭비하는 시간이 엄청 많다며 마음에 새기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문자를 보며, 뭔가 뜻깊은 일을 한 마냥 흐뭇했다. 괜히 문자의 글귀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곱씹을 정도는 아니다. 이미 내 입을 떠난 말이고, 나는 내게 필요할 말을 곱씹고 싶다.


7.

집으로 도착하여, 택배로 배달된 책 상자를 풀었다. 때론 이것 만으로도 하루 피로가 풀리지만, 오늘은 그래도 고단했다. 상자 속에서 시집부터 꺼내 들었다. 펼쳐보다 눈에 들어온 시는, 제목이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아래는 시의 전문.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황지우 선생의 시다. 여러 생각에 빠져든다.

한밤중에 깨어 글을 쓰는 나도 졸리운 눈으로 

맹하게 바라본다. 저물면서 더 빛나는 오늘을.


언젠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즈음엔

저물면서 더욱 빛나는 인생을 쳐다보고 싶다.

죽음은 휴식일까? 끝일까? 아니면 영생일까?


"사람은 죽음을 혐오할 것으로만 알고

그것이 휴식인 줄은 모른다." - 열자


잠도 그렇다. 잠을 生의 낭비로 아는 이들은

그것이 필수적인 휴식인 줄은 모른다.

나는 이제 그 달콤한 휴식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