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병세도 우정도 깊어진 주말

카잔 2014. 6. 23. 12:13

 

심경은 복잡하고, 마음은 분주했던 어제.

 

1.

1박 2일로 다녀온 MT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는 긍정적 뉘앙스지만, Good이나 Great의 수준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충분히 좋은 MT 였을 테지만, 2년 교육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MT로서는 미흡했다. 그간의 수고를 서로 격려하고, 교육 수료를 축하하는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마지막 MT를 빛낼 프로그램을 준비치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신경써서 정성껏 피날레 행사를 마련했어야 했다.

 

2.

MT에 대해 반성하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20분 만에 다시 나서야 했다. 샤워를 하고 며칠짜리 짐을 챙기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짐을 제대로 챙기긴 했는지 모르겠다. 대구에 다녀올 생각이다. 오늘 저녁, 여럿이서 함께 친구 면회를 가기로 한 것. (휴... 면회,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 숨) 다행하게도 허겁지겁 열차를 타야 할 정도의 빠듯함은 아니었다. 출발 10분 전, 열차 탑승! 열차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아쉬웠던 MT나 아픈 친구 때문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힘겨움이 있을 터, 나도 마찬가지다.

 

3.

가방에 챙겨온 바나나 하나를 입에 넣었다. 배는 고팠지만 두 개까지 먹진 못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이게 저녁이겠다, 싶어 반건조 고구마도 챙겨 먹었다. 사람이란 먹어야 사는 존재다. 슬픔에 빠져있을 때에도 결국 먹어야 한다. 그런 자기가 짐승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오늘은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삼십 수년을 살면서 몇번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그랬다. 

 

4.

동대구역에 내려 곧장 택시를 탔다. 기사의 질주 덕에 20분도 안 걸려 대구의료원에 도착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온 건지, 지금 생각해 보니 동대구역에 내려 대구 하늘은커녕 대구 공기도 마시지 못한 느낌이다. 택시 안에서 통화를 하면서도 내내 숨을 쉬었겠지만, 여유는 전혀 없었다. 오늘은 친구와 나만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니, '무엇을 이야기할까?'를 많이 생각지도 않았다. 병원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했다.

 

5.

초등학교 6인방 모두가 병실에 모였지만, 아픈 친구는 우리가 머무른 2시간 내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마취성 진통제가 아니면 고통을 참기 힘든 그의 상태다. 약에 취한 탓이 크지만, 어제는 의식도 오락가락했다.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심각해지는 최근 3일이다. 친구의 흐리멍텅한 눈과 친구 아내의 눈물 그리고 멀리서 달려온 친구들의 놀란 표정. 세 가지 장면이 오버랲되어 덤덤한 슬픔이 되어 내 가슴과 머리 속을 떠돈다.

 

*

어제는 친구랑 술 한 잔을 하고서 친구 집에서 잤다. 오늘 아침엔 전화 진동소리에 깼다. 3년 전에 어머니를 여읜, 직장에서 만난 친구였다. 안부차 전화한 것이고 나를 염려해 주었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친구는 인생무상의 순간에서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인생무상의 귀결이 허무나 도락이 아닌 삶을 향한 고마움과 성실이 될 수 있음에 대해서는, 서울에서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회포를 풀어야겠다.

 

와우라는 공동체에서 만난 인생의 벗들과 보낸 주말 이틀. 

친구 곁에서 잠든 어젯밤 그리고 친구의 목소리로 시작한 오늘 아침.

친구를 향한 애정이 친구의 병세만큼이나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