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아침 청소를 하다가

카잔 2014. 11. 7. 08:21

 

나는 청소에 부지런한 어른이다. 오늘 아침, 좁은 작업실을 쓸고 닦는 일에 한 시간을 투자했다. 손이 자주 가는 물건과 장소에는 항균 스프레이를 뿌렸다. 나는 매일 쓸고 닦고 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이내 어지럽혀진다. 먼지는 날마다 쌓인다. 매일 소생하는 먼지 같은, 금새 흐트러지는 책상 같은 생명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열역학 제2법칙은 힘차게 진행된다.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거하거나 일정하며 감소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을 탓할 것까지도 없다. 나는 어른이기에 앞서, 제 방을 어지럽히는 아이다. 이튿날이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내가 정돈해야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날마다 어지럽힌다. 욕심도 많은 아이다. 읽을 책들이 무더기로 쌓였는데도, 오늘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내 안의 아이는 욕망하고, 어른은 제어한다. 싸움은 줄곧 이어진다. 스스로를 제어해야 한다는 것, 인생살이의 아쉬움이자 힘겨움이다.

 

어떤 이들은 욕망만을 중시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자기는 행복하지만 타인에겐 무관심한, 잘해야 훌륭한 개인주의적 삶을 살 뿐이다. 타인의 욕망을 읽어내는 감수성 없이는 훌륭한 삶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욕망을 숨기고 억제하며 살다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어른이 된다.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충족시키지 않으면서 행복할 순 없다. 나는 가장 아이다우면서도 매우 어른스러운 삶을 누리고 싶다.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 - 공자

 

공자는 아름다운 조화를 일궈낸 인물이리라. 경이로운 경지다. 공자는 안회가 죽었을 때 며칠동안 울었고 백우가 병을 앓을 때 슬프게 탄식했다. 이를 두고 아이다운 감정표현이라고 표현한다면, 경솔하다. 아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지속적으로 슬퍼할 줄 모른다. 아비의 죽음을 당하고도 장난감으로 웃는 게 아이다. (사실, 어른들도 부모나 친구의 죽음에도 금새 다른 일로 웃는다. 그걸 감추는 데 능할 뿐.) 

 

공자는 즐길 줄도 알았다. "공자께서는 사람들과 노래 부르는 자리에 어울리시다가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하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하시고는 뒤이어 화답하셨다."(논어 술이편,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구 선생님이 떠오른다.) 공자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울고 웃었던 인물이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공자의 슬픔과 탄식 그리고 기쁨은 아이다운 욕망과 어른다운 감수성의 조합이 만들어낸 것이다.

 

진솔하면서도 적절한 감정은 감동적이고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준다. 그러한 감정 표현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아이다움과 어른다움이 동시에 깃들어야 가능하다. 아이다운 진솔함, 어른다운 감수성! 아이다움 + 어른다움이란, 다시 말해 욕망과 절제의 조화요, 소원과 의무의 중용이다. 조화는 균형보다 고차원적이다. 균형은 양쪽을 조금씩 덜어냄으로, 조화는 덜어냄 없는 어우러짐으로 이뤄내는 것이다.

 

비단 감정만이 그럴까. 모든 위대한 행동과 지성은 서로 다른 양극단의 가치를 지혜롭게 조화시킨 결실이다. 지혜롭게, 라는 말이 모호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조화의 비율이 TPO에 따라 달라지니까. 지혜는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tion)에 따라 달라진다. 미셸 푸코의 멋진 표현처럼, 나 역시도 달력과 지도가 없는 곳에서는 말하기가 어렵다. 특정한 상황을 벗어나면, 지혜도 자취를 감춘다.

 

글이 관념적 사유로 흘러가고 있구나!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하는 중이라 즐겁지만, 어줍잖은 사유로 글을 망치고 싶지는 않기에, 서둘러 요점을 말하고 맺어야겠다. 내 안에는 아이다운 면도 있고, 어른다운 면도 있다. 서로의 미덕만을 간추려 조화시키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경영의 현자는, 어느 한쪽을 깎아내는 조각가의 모습이 아니다. 둘을 버무러 새로운 모습을 빚어내는 요리사에 가깝다.

 

음식 재료 각각이 살아있으면서도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나는 내 안의 여러 자아가 지닌 미덕만을 잘 뽑아내고 주조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중요하리라. 아이다움의 미덕과 악덕은 무엇인가. 어른다움의 미덕과 악덕은 무엇인가. 어떻게 미덕의 발현을 도울 것인가. 악덕을 잠재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미덕과 악덕을 잘 분별하도록 눈이 밝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덧(1)

아침 청소를 하다가 방을 어지럽히는 이도 나요, 정돈하는 이도 나임을 보았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을 퇴보시키는 이도 나요, 진보시키는 이도 나 자신이리라.

 

* 덧(2)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조언이, 나는 때때로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런 어른들이 종종 '아이답게' 보이는 행동을 종종 꾸짖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답게 굴어라"는 말은 어른들의 세계에나 필요한 예절을 잃지 않는 동시에 천진난만해야 한다는 고난도의 요구는 아닐까. 내 생각엔 아이에게도 어른다움이 필요하고, 어른에게도 아이다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움'은 어떤 것의 고유성을 꽃피우기 위한 개념이다. 타자의 생각을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