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명실상부가 나를 위로하다

카잔 2015. 1. 12. 16:34

 

1.

명실상부한 삶은 오랫동안 나의 바람이었다. 명실상부의 적은 내면에 존재한다. 허영심, 불성실, 자기기만은 대표적인 적이다. 필요 이상의 겉치레를 자주 하거나 실제보다 많이 아는 척하는 허영심. 필수적 노력마저 기울이지 않는 불성실. 타인의 부정확한 칭찬을 듣고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닌 줄 알면서도 제3자에게 퍼트리는 자기기만. 나는 3가지를 명실상부를 방해하는 악덕으로 여기고, 이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외부에도 강력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착각도 명실상부를 위협한다. 사실 누구나 종종 착각한다. 헷갈리게 기억하거나 사물을 혼동한다. 때로는 사람에 대해서도 착각하는데, 실제보다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한다. 과소평가는 그럭저럭 괜찮다. 인생살이에서 오해는 불가피하니까.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과소평가는 적당한 기회를 찾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옳은지 아니면 내가 그들의 생각보다는 좀 더 나은 면이 있는지 확인하는 노력이다. 정확한 이해는 관계를 더욱 빛내 주니까.

 

3대 악덕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종종 과대평가를 받곤 한다. 강연을 잘하면, 잘 아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사실이라면, 강사들은 자신의 거품을 스스로 걷어낼 줄 아는 것을 직업윤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강사는 콘텐츠의 전문가가 아니라 전달의 전문가들이니까.) 나는 명실상부의 삶을 위한 적극적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만약 사람들이 나는 실제보다 1% 크게 생각한다고 느껴지면, 그들을 탓하기보다 그 1%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2.

나도 이러한 생각들이 강박관념 수준임을 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내게만 들이대는 기준이니까. 게다가 다음의 생각이 사실일지도 모르고. 탁월함은 정상에서 살짝 비껴갔다고 여겨지는 정신 상태에서 빚어진다. (‘빚어진다’ 라고 단정하듯 표현했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른다. ‘빚어지는 게 아닐까’ 정도의 신념일 뿐.)

 

3.

며칠 전 발견한 사실인데, 나는 배움에 헌신해 온 사람이다. 배우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힘껏 노력해왔다. 첫 책을 출간한 이후에도 나는 줄곧 배웠다. 아니 20대보다 더 정교하게, 더 깊이 배워왔다. 그런데도 나의 출간 이력은 첫 책으로 끝이었다. 몇 편의 원고를 유실한 두 번의 사고를, 때때로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명실상부를 떠올리니 깊은 위로가 찾아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하여 그 성공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걸 걱정했다. (참 별걸 다 걱정하는 고만. 아무나 일찍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말야.) 나는 실제의 나만큼만 성공하기를 바랐었다. 그렇다면 올해와 내년에 출간한 책이 행여 1만권씩 팔리더라도 크게 부담스러워할 것 같지 않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일부일 뿐이니까. 나는 항상 발표한 글들의 2배 이상은 발표하지 않은 채로 간직해 왔으니까.’ (작은따옴표의 말들을 쓰면서 얼마나 평안했는지... 신께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최근 불평만 쏟아 부었던 그 신께 말이다.)

 

4.

놀랍다. 은근히 가졌던 생각들과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얘기한 발언들이 얼마나 삶에 크게 작용하는지 발견할 때마다 정말 놀랍다. 그 생각과 말들이 진심이 아니어도 작용력은 똑같다. 사람들에게 엄살을 부리면, 다시 말해 실제보다 더욱 힘들다고 말하면, 실제 생활에서 해낼 수 있었던 일들도 못하고 만다. 엄살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고, 자신이 해낼 수 있었던 일도 놓치고 말았으니까.

 

5.

나는 다시 안도한다. 명실상부의 삶은 내가 정말 원하는 모습이니까. 만약 명실상부의 삶을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고, 말로만 근사하게 떠벌린 것이라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괴로워했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그리 말했으니 하소연하기에는 민망하고, 그렇다고 내면에서 만족을 끌어올릴 수도 없으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부의 인정과 내면의 만족, 둘 중 하나를 갈망한다. 인정과 만족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고, 둘 다 없이 살기는 힘들다. 나는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요즘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럽다. 7년째 출간한 작품이 없지만, 소수의 독자들이 여전히 내 글을 읽어준다. 이것은 내가 꿈꿔온 모습이다. 헤세의 말이 떠오르지만, 책이 양평 집에 있다. ‘다섯 명의 독자가 당신의 글을 읽고 삶의 변화를 일궈냈다면 당신은 멋진 작가다’ 이런 정도의 말이다.

 

나는 만족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는다.

나도 그리고 나를 아끼는 독자들도 내가 더 나은 글을 쓰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