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3년 만의 만남

카잔 2008. 5. 2. 10:54


4시 50분에 눈을 떠서 바쁜 아침을 보냈다. 한국리더십센터 웹진 <보보의 독서노트>를 작성하고 메일 두 통을 보낸 후 집을 나섰다. 용산역으로 향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다. 경부선이 아닌 호남선을 탄 것은 작년 여름 순천으로의 강연 여행 이후 처음이다. 오늘 향하는 곳은 광주의 전남대학교이다. 광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내게는 민주화항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금은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광주. 대학생일 때에는 매년 5월 18일마다 광주에서 피고 진 영혼들의 넋을 기렸다. 마음속에 언젠가 꼭 망월동에 가 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따스하고 포근하다. 며칠 전, 베이징에서의 둔탁한 하늘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봄날은 무척이나 화창하다. 호남의 산세는 여성스럽다. 작고 부드럽다. 험준하고 웅장한 영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오늘 나는 꼭 호남의 산세 같은 벗 한 명을 만난다. 나는 그를 참 좋아했다. 2년을 함께 살면서 나는 그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에 대한 첫인상이 떠오른다. 그는 썩 영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무척 어리숙하게 보였다. 그는 늘 실수 연발이었고, 태도는 엉성했으며 말은 어눌했다. 나중에 내가 그를 존경하게 될 줄은 귀신도 몰랐을 만큼 그는 어.리.숙.한 이등병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 인연이란 것이 참 귀한가 보다. 선임병과 후임병으로 만나 전역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주고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 차이로 입대한 우리는 같은 내무반이었으며, 같은 군수과에 속하여 2년을 복무했다. 우리는 군생활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전역 후, 한 번 꼭 보자며 기약을 거듭한 것이 어느 새 3년이 지났고, 이번에 전남대학교에서의 강연 의뢰가 들어와 만나게 되었다. 이 놈이 광주에 산다는 것이 강연 의뢰에 응한 이유였다. 지금 나는 3년 만에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열차 안이다. 오늘은 2008년 5월 2일이다. 놀랍게도 내가 전역한 날이 2005년 5월 2일이고, 그래서 꼭 3년 만에 이 녀석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 시각이 오전 10시, 3년 전 오늘 바로 이 시각 즈음에 이 놈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어리숙한 이 놈은 상병이 되면서부터 군대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였고, 부드럽고 관대한 리더십으로 후임들의 신임과 애정을 얻었다. 내가 갖지 못한 그의 성품은 더없이 훌륭하게 보였으며, 성실하게 근무하고 신중하게 내무반의 문제들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에게 매료되었다. 늘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어려움을 느꼈던 후임들도 이 녀석과는 친하게 잘 지냈다. 나는 그런 이 녀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못났더라면, 열등감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놈은 나에게 가장 큰 전역 선물을 안겨 주었다. 전역하기 전날, 군수과 회식 때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읽고 있던 책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존경하게 된 사람 5명을 적으라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그 다섯 명 안에 내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았고, 놀랄 만큼 기뻤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냐고 물었다. 그 녀석의 신뢰를 얻고 있는 줄 알았더면 나는 조금 더 자신 있게 군생활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녀석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나는 그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라는 답을 들었다. 전역하기 전, 나는 그 녀석의 책을 펼쳐 녀석 특유의 귀여운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힌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믿어졌다. 그만큼 그 녀석의 존경은 내게 아주 큰 선물이었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오늘 3년 만의 만남을 가질 것이다. 나는 선물로 준비한 한 권의 책을 건네고, 그간 보고 싶었던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간의 생활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어 방금 통화를 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 “글쎄요...”
“3년 전 오늘을 생각해 봐라.” “아.. 이거 축하할 일인가요 아닌가요?”
“하하하... 우리 오늘 꼭 3년 만에 만나는 거야.”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 생각해 두라며 전화를 끊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슴 속에는 군생활의 추억이 피어오른다. 보고 싶다. 현구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