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벤야민 공부와 우정의 추억

카잔 2015. 3. 8. 09:24

눈을 뜨자마자 벤야민이 떠올랐다. 누운 채로 잠시 벤야민을 생각했다. 벤야민의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왜 벤야민일까'를 묻는 성찰이기도 했다. 잇달아 떠오른 이는 숄렘이다. 게르숌 숄램, 그는 『한 우정의 역사 :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의 저자로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였다. 두 학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지적 정신적으로 깊은 유대를 나눴다. 생각의 연쇄는 내 친구 P에게로 가서 멈췄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제 외출하고 나갔던 가방 속 내용을 꺼내 정리하고 책상에 앉았다.

 

아침 첫 생각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인생살이의 작은 표지가 아닐까. 눈을 뜬 직후에 의식과 무의식이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교차한다면, 아침 단상은 의식이 달아나려는 무의식을 붙잡은 셈이다. 표지라면, 어떤 표지일까? 이것을 거룩한 소명과 원대한 숙명으로 해석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이런 생각 뿐이다. '내 일상에 의미 하나를 더할지도 모르고, 내 아픔을 치유하는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아침 생각에 대한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벤야민을 공부하시게. 마치 벤야민처럼 공부하시게. 그리고 숄렘처럼 P를 짙고 깊게 추억하시게.'

 

벤야민 공부의 길은 활짝 열렸다. '도서출판 길'에서 발터 벤야민 선집을 정선된 번역으로 출간 중이기 때문이다. 선집이라 하나, 2015년 1월에 14권짜리가 나왔으니 선택의 폭이 전집에 가깝다. 벤야민 전공자의 국내 연구서도 있다. 벤야민의 미메시스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성만 교수의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은 저작의 흐름을 따라 벤야민 사상 전반을 소개하는 책이다. 수잔 벅 모스 등 벤야민의 사상 일면을 다룬 외국 연구자들의 번역서도 많다. 나는 최성만 교수의 저서부터 읽기로 했다.

 

오래 전,『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읽으려고 시도했었다. 『일방통행로』 역시 통독하지는 않았지만 물건 주섬주섬 집어올리듯 읽기도 했다. 『한 우정의 역사』를 읽고 몇 년이 지난 후, 마틴 발저를 읽으며 발터 벤야민이라고 이름을 착각하고서는 바보같은 혼돈에 빠진 적도 있었다. '왜 서술이 서로 다를까?' 벤야민을 읽으면서도 그를 몰랐던 시기였다. 남독이었고, 지적 허영심 탓에 다른 사상가로 이내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리라. 오늘 아침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집었다가 놓았다. 『기억의 정치학』으로 기초부터 얼개부터 세우자고 결심하면서.

 

벤야민은 마르셀 프루스트와 카프카를 흠모했다. 보들레르의 감수성도 찬양했다. 『악의 꽃』을 읽지 않아 보들레르는 모르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와 카프카에 대한 애정은 나와도 겹친다. 그 애정 깊이 차이가 크리라 생각하니 왜 내가 빈약한 지성을 소유할 수 밖에 없는지 감이 온다. 의욕이 솟는다. 내 지성에서 메꾸어야 할 웅덩이를 발견하면 열정을 느낀다. 벤야민은 생전에는 주목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상과 비평론은 점점 더 영향력이 커졌다. 비평가로서의 벤야민은, 비평가로서 한번은 탐독해야 할 사상가였다.

 

숄렘은 어떠한가. 나는 그를 모른다. 그의 학자연한 모습보다는 우정을 추억하는 친구의 모습으로서 읽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한 우정의 역사』 탐독은 숄렘 읽기가 아니라, 우정 읽기다. 마땅히 또 다른 우정론으로 이어가게 될 것이다. 키케로의 에세이부터 플라톤의 대화편까지. (『우정에 관하여』와 『뤼시스』를 말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며 행복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중요성도 고찰해 보고 싶다. 지적 여정만이 되지는 않으리라. 무엇보다 내 친구 P를 추억하는 감성적 치유의 여정이기도 할 테니까.

 

이 작업을 지금 시작할 수는 없다. 3~4월엔 강연 일정도 많고, 현재 다른 원고도 탈고 중이다. 빠르면 6월에는 착수할 수 있을 것 같다. 6월은 벤야민을 읽고 우정을 추억하는 달로 보내야겠다. 최근 수년, 대한민국의 여름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다. 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 아침의 내 결심을 행동과 열정으로 달구어낼 것이다. 이리 쓰고 나니 공부를 하고 글을 쓸 때 찾아가고 싶은 공간이 생겼다. 울산의 방어진과 진하 해수욕장, 대구의 광덕사 그리고 비진도. 시공간을 공부와 추억에 맞출 올 여름이 기대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2015년 초봄을 산다.

다가올 계절들은 잊고 움트기 시작한 싹을 관찰하고 봄을 예찬하리라.

공부 계획을 염두에 두되, 나의 몰입은 내 손에 잡은 작업을 향한다. 

 

 

[사족] 행동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포스팅 하나로 글을 쓴 것은, 내면적 결심을 다지기 위함이나, 그보다 앞선 동기가 있다. 물을 마시고 책상에 앉아 먼저 와우 10기의 글을 읽었다. 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종교적 메시지로 결부시키기도 했다. 나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가 반드시 종교적 메시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열망 덕분에 포스팅을 썼다. 아니면 생각만 하고 넘어갔을런지도. 이 글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무엇이 삶인가?

 

관계가 삶이다. 아내가 힘들어한다면 삶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일도 삶이다. 업무 결과가 신통치 않다면, 그것 또한 삶이 내게 무언가를 말을 하는 것이다. 일상도 중요한 삶이고, 고민도 삶이다. 번잡스런 일상, 불안과 고민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중이다. 내가 해낸 일의 결과를 유심히 관찰하고 소중한 사람의 반응이나 행동이 뜻하는 바에 귀기울이고 인생의 시련이 준 고통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 이러한 노력들이 책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일의 결과 아내의 불평에 무관심하고 싶다면, 그 무관심을 들여다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 Book Story > 즐거운 지식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공부하는가  (5) 2015.04.09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2) 2015.04.06
문학 읽기의 저력  (0) 2015.02.26
생각의 힘을 키우는 TIPs  (0) 2015.02.11
서양사의 주요 흐름  (2) 201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