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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읽기의 저력

카잔 2015. 2. 26. 09:38

 

3월 GLA 서양문학사 수업에 신청하신 한 분이, 오늘 아침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질문이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반가운 물음입니다. 

 

- 문학이란 무엇인가
-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두 질문을 품고 이번 수업을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여러 문학 텍스트를 접하며 건져 올려야 하는 공부의 최종적 목표가 될 질문이니까요. 주신 물음에 이렇게만 답변드릴 수는 없어서 문학 읽기의 저력에 대해 제가 고민한 흔적도 공유하겠습니다." 라고. (공유한 글을 아래에 옮겨 둡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합니다. 개인의 고유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뜻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면이 있는가 하면, 서로 판이하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사람의 보편성과 개인의 특수성을 알아갈수록 인생살이가 편안해집니다.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중요하고 주요한 영역이니까요. 어떤 사람의 특수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의아해합니다. 그를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때로는 화를 냅니다. 심지어는 관계를 끊기도 하죠.

 

“나는 정말 (그를)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말들을 주변에서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만나거나 그 사람의 기질을 갖게 되면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친구의 어떠한 행동을 비난하던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편의상 그를 승기라고 합시다. 승기는 친구의 상황을 이해 못 하겠다고 말합니다. 세월이 흘러 승기가 친구와 비슷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때 승기는 친구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고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친구를 이해하게 된 겁니다.

 

경험은 이해를 부릅니다. 생각의 전환도 이끕니다. 누구나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가 ‘그럴 수 있구나’라고 바뀐 적이 있을 겁니다.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던 이들이 이해되고,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해되는 인식의 전환에는 ‘경험’이 있을 겁니다. 두 가지의 예를 들겠습니다.

 

1) 어린 시절, 세계문학을 읽으며 수많은 불륜 장면에 화가 나던 이들도 성인이 되어 세상의 많은 불륜을 인식하고 나면 세계문학이 왜 그리도 자주 불륜을 다루는지 이해합니다. 좋은 문학은 세상의 단면을 진실하게 담아내니까요. 새로운 ‘인식’이 인생을 이해하게 만든 경우입니다.

 

2) 친구가 부모님을 여의고 고통스러워해도, 자신이 사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친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자신도 소중한 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나서야 예전에 부모님과 사별한 친구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제야 친구를 이해하게 된 겁니다. 고통의 ‘경험’이 인간에 대한 유대를 강화해 주는 경우입니다.

 

이해는 중요합니다. 괴테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않으면 경멸한다.” 이해한다면 적어도 경멸하기는 힘들다고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는 멋진 말입니다. 사랑이란 가치는 고귀하고 강렬해서 이해 없이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앎이 이해를 부르고, 이해하고 나면 사랑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요컨대, 새로운 인식이나 경험이 세상을 이해하거나 타인을 향한 감수성을 키웁니다. 살아갈수록 지혜로워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많아진 경험 덕분입니다. 이런 경우, ‘나이가 들수록’보다는 ‘경험이 많을수록’이 지혜로워진다고 표현해야 더욱 정확하겠지요.

 

경험에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시공간적인 제약이 존재하니까요. 하룻밤에 많은 경험을 쑤셔 넣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말인데, 이러한 제약을 얼마간 제거해 주는 것이 문학입니다. 문학 작품에 흠뻑 빠져든다면, 간접 경험을 통해 감수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경험적으로 충분히 동의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2013년 10월 06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데이트나 입사 면접에 가기 전에 뭘 하는 게 좋을까. 체호프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는 어떤 글을 읽는 것이 공감과 사회적 지각 능력, 감성지능을 발달시키는 데 좋은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뉴욕 뉴스쿨의 심리학자들인 에마누엘레 카스타노 박사와 데이비드 키드 연구원은 18~75살의 독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저명한 작가의 문학작품, 베스트셀러에 오른 대중소설, 그리고 진지한 논픽션의 일부를 읽게 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지 등을 구별해내는 5개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실험 결과 문학작품을 읽은 그룹의 점수가 다른 두 그룹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중소설을 읽게 한 그룹은 아무것도 읽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한 점수를 기록했다. 대중소설은 주로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욕망을 다루는데다 작가가 흥미로움을 더하려고 작품의 전개 과정을 특정 방향으로 통제하고 있어 독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등장인물의 삶에 대해 섬세하고 길게 탐구하는 문학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해당 인물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게 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력이 높아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위대한 문학 작품에는 인생의 단면과 인간에 관한 진실이 담겼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 현실을 인식하게 해 주고,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 우리에게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문학이 재미를 위한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저는 문학 작품이 세상과 사람을 향한 감수성을 키워준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수성을 키우는 문학 읽기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20세기의 주요 철학자인 들뢰즈가 명제를 따르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로서의 문학 읽기를 하면 됩니다. 어릴 적, 문학을 처음 읽을 때의 저는, 소설을 읽다가 ‘와! 이 사람 정말 매력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야’ 혹은 ‘나랑 정말 비슷한 인물이구나’ 하는 이유로 작품 속의 한 인물을 사랑했습니다. 이것도 문학 읽기의 매력이요 힘이지만, 감수성을 키우는 들뢰즈식 접근을 해야 합니다. 문학을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을 만나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겁니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들뢰즈의 명제는 대중소설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중소설의 작가들보다는 위대한 순수문학의 작가들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지혜와 인간 이해를 모두 갖춘 작가들을 소개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김영하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통찰을 지닌 작가입니다. 그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추천합니다. 소설가들이 꼽는 최고의 소설가로 언급되는 톨스토이도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뛰어납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매우 긴 장편이지만 의외로 재미있게 읽히는 고전입니다. 현대 작가의 가벼운 책 한 권도 소개합니다. 기억의 한계를 다룬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페이지 곳곳에서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넘쳐납니다.

 

인류사에 등장했던 위대한 작가는 많습니다. 그들은 인간 실존의 단면들을 탐구했습니다. 읽을수록 삶과 사람에 대한 안목이 키워지는 문학 작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제겐 인생살이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살이에도 기쁨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