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다가

카잔 2015. 2. 6. 13:32

1.

『201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중이다. 대상 수상작 김숨의 <뿌리 이야기>와 한유주의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을 읽었다. <뿌리 이야기>는 삶의 터전을 잃거나 극심한 정체성의 상실을 겪은 소수자들(종군위안부, 입양고아 등)의 아픔을, 뿌리채 뽑힌 나무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이태동 선생의 말마따나, "기계문명이 생력을 파괴하는 문제는 로렌스 등 많은 현대 작가들이 다뤄온 주제"다. 나 역시 이 소설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지는 못했다. 땅에서 뽑혀진 나무의 뿌리 형상을 통해 절묘하게 상실과 아픔을 드러낸 표현에 신선감을 느낀 정도다.

 

문학사의 걸작들은 주제가 진중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선도했다. (철학에서는 데카르트로, 역사에서는 종교개혁으로, 문학에서는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를 근대의 출발점으로 본다. 보카치오는 14세기 사람이고, 루터의 종교개혁은 16세기 초, 데카르트는 16세기 말에 근대철학의 선언을 알렸다. 문학, 역사, 철학의 순서다. 시대변화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예술적 감수성이었다. 이론이 변화를 포착하여 뒤따른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한 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 중 최고에 뽑힌 작품들이라면, 주제의 '변주'가 아닌, 시대를 읽어내는 '주제'를 새롭게 연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것이 <뿌리 이야기>를 읽고서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2.

나의 의문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러한 기대는 문학 영역 바깥을 향해야 한다고. (이를테면 철학에게 말이다.) 나의 고민은 조금 더 나아가 있다. 21세기 문학에게 합리적인 기대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21세기'라는 말을 떼어야 더 좋은 질문이 되는 걸까? 문학에게 최근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해낸 역할(시대적 징후 포착)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예술의 본질인 표현 양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탐미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내용마저도 선도적, 성찰적, 사회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색노트에 고민의 흔적을 썼다. (문득 잃어버린 사색노트 파일이 떠오른다. 아! 사라진 나의 공부꺼리들, 공부주제들, 공부계획들...!! 언젠가 결심한 것처럼, 상실감을 이겨내는 길은 음미와 성실의 조화다. 회복을 위한 음미와 재건을 위한 성실.) 고민에 답하기 위해, 이번에 품은 물음들에 힘차게 답하기로 했다. 읽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 21세기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촘촘히 읽기, 오스카 와일드 작품과 비평선 읽기, 작품을 읽으며 5관왕 소설가들 찾기, 리얼리즘이 소설 발전의 종착역인지 검토하기(에리히 아우어바흐).

 

3.

올해는 바디우를 읽으려고, 며칠 전에 그의 책들을 구입했다. 예전 알라딘에서 특가로 구매할 때에는 5만원이면 여러 권의 책이 왔는데... 이번에는 6만원에 고작 세 권이다. (하긴 며칠 전 지젝의 책은 4만 5천원에 달랑 한 권.) 프랑스 현대 철학에 관한 책들을 간간히 읽어 둔 터라, 바디우를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한 방향은 파악이 됐다. 입문부터 주저까지를 적어두려다 관둔다. 책 사기를 즐기는 이들의 지갑을 열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블로그에 언급한 책들을 모조리 샀다는 분을, 최근에만 세 분을 만나서다.)

 

우리는 모든 장르의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읽을 수도 없다. 자신이 원하고(want), 자신에게 필요한(need) 책을 조화롭게 읽어가면 그만이다. 지금의 관심사와 수준에 적합한 책들부터 말이다. 그리고 1년 내에 읽을 책들만 구입해야 한다. 미래의 우리는 지금 구입한 책들에게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구입한 책이 너무 쉬워졌거나, 더 재밌고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거나. 책을 자주 사는 이들은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책값이 비싸다. 구입하는 데에도, 보관하는 데에도, 그놈들을 싸들고 이사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나는 믿는다. 책을 읽지는 않고 구입하기만 즐기는 이들의 책 구입 일부는 친구와의 식사값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누구보다 먼저, 내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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