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reverse] 성찰일지 (1)

카잔 2015. 5. 14. 11:57

 

1.

5월 2일, 번개처럼 내 독서에 전환점이 일어난 날!

나는 이 날을 계기로 내 인생에 반전(reverse)을 만들고 싶었다. 단박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마도 2014년~2015년을 내 인생의 침체기로 회상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긴 하지만 - 나는 그 어떤 충격에도 삶을 탕진하거나 우울함의 구덩이에 빠지는 말아야 한다고 언젠가 굳건하게 생각했었다 - 좀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내 하루하루에 분출하지는 못하면서 8개월여를 지냈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진다면,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rebirth) 새로운 기운으로 살아간다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

작은 것 하나부터 확실히 잡자고 생각했다. 간단하면서도 작은 일, 이를테면 책상정리, 화장실 청소, 노트북 폴더 정리, 핸드폰 사진 정리와 같은 일들을 확실하고 정성스럽게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새로워지니까. 열정은 소명으로부터 오지만, 사소한 물건 하나로부터도 온다! 나는 그 날 이후, 자주 물건을 정성스럽게 매만졌다. 노트북을 세정제로 부드럽게 닦아주기도 하고, 꽃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2~3일마다 휴대폰 사진을 정리했고 샤워할 때면 사랑스럽게 내 몸을 닦았다.

 

무엇보다 학습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날 새벽에 벌어진 태도 변화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말그대로 느닷없이 깨달았다. 격물치지야말로 독서법의 근본이고, 타자화야말로 학습의 최고봉임을! 나는 책의 한 문단, 한 문단을 치밀하게 따져가고 개념을 정립해 가며 책을 읽었다.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대부분의 야채들은 대충 씹어 먹으면 흡수율이 10%에 불과하지만, 30~40번을 씹어 먹으면 60~80%에 이른다. 지금까지 나는 대충 읽어왔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넘어가는 건성적 태도와 불성실함이 내 독서생활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독서가로서는 다시 태어났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건성 대신 정성을, 불성실 대신 치열함을 선택했다.

 

3.

R Day 이후, 나는 번호를 붙여가며 책을 읽기로 했다. 책의 권수에 연연해하는 편이 아니고, 읽은 권수보다 실천하여 변화된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귀찮은 작업이지만 새롭게 태어나고 보니 내가 소홀히 여겼던 것들조차 챙기고 싶어졌다. 적어도 학습의 영역에서만이라도 그리 하겠다는 열망이 솟았다. 소홀한 것들도 그것 자체가 소홀한 게 아니라 내 관점에서의 판단일 뿐이고, 마침내 소홀하다고 여겼던 영역까지 끌어안고 나면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라서게 된다. 일련번호의 첫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이었다. 이후의 목록들은 아래와 같다. 이미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이다. 괄호 안의 책들은 읽을 책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소송』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편영수 옮김)

편영수 『프란츠 카프카』 (살림지식총서)

최윤영 『카프카, 유대인, 몸』

 

 

데이비드 리프 『어머니의 죽음』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요즘 영화와 연극에도 시간을 더 많이 주고 있다. 연극 <리어왕>을 관람했고, 조만간 카프카의 <소송> 연극을 관람할 것이다. 지난 날과 이번 달에 관람한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주정뱅이 천사>(1948), 스티븐 소더버그의 <카프카>(1991), 요시다 다이하치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2013), 베르너 헤어조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1972),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1939). 조만간 영화에 대한 리뷰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반가운 느낌을 붙잡아야겠다. 다큐멘터리 영화사를 일별이라도 하려고 에릭 바누의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와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두 권을 비교하다가 후자를 주문했다.

 

4.

의미 추구는 나의 천성이고 학습과 감수성은 나의 장기다. 그리고 변화와 성장은 나의 노력이다. 천성과 장기 그리고 노력을 한곳에 모은다면, 어찌 의미 있는 결실이 나를 피해간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어린 시절의 돋보기 놀이를 되새겨야 한다. 신천 강둑에 쪼그리고 앉아, 돋보기를 통해 태양 광선을 한 점으로 초점을 맞춰 개미에게 쏘아붙였던 그 장면이, 성인이 된 내게 필요한 모습이다. (애꿎은 개미여 미안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곧 낭만주의적 내 성향이 불어일으킨 생각일 테고.)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훌륭한 학생이 자신의 연구 주제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듯이, 나도 그러하리라.

 

5.

학습 이외의 내 일상도 조금 더 달라졌으면 좋겠다. 사회적 교류의 확대(인간관계의 양적 증대도 필요하지만 내게는 일차적으로 질적 개선이 우선이다), 집필 재개(여전히 글쓰기를 못하고 있으니 시급하다), 건강 관리(어깨 치료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인문주의를 권함』 출간(요즘 들어 내 책의 깊이에 대한 회의가 자꾸 든다. 고질병이다), 블로그 업데이트(깊이가 없다는 생각은 블로그 포스팅에도 영향을 미쳤다) 등이 일상경영에서 요즘의 화두다.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요즘의 나를 휘어잡고 있음을, 이 글을 쓰면서도 느낀다. 수잔 손택 강독회를 블로그에 공지한 일도 이런 문제의식으로 용기를 낸 것이다. (이미 GLA 수강생들과 와우들로 10명의 신청자가 있었다.) '내가 이런 걸 한다'고 알리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나는 진심으로 부끄럽다. 일천한 지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면, 낯이 달아오른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제임스 조이스와 카프카 수업을 블로그로는 알리지 않았다. 와우든, 수업이든 외부에 알리기를 꺼려하는 나의 모습을 불만스러워하는 와우들이 있다. (애정을 가진 그들, 참 고맙다.) 나는 와우 선생으로서도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재능을 키우고 마음을 따라간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질병을 넘어서려는 노력도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이리 생각하고 나니, 손택 공지를 두고 열흘이나 고민했던 게 헛헛해진다.)

 

* 성찰일지를 쓰고 나니, 와우 한 명이 "와우나 지인 외에 사람들에게도 알리시고 미리 공지도 하시고 선생님의 새로운 시도 반갑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이 글은 아직 읽지 못했을 테고, 어제 손택 강독회 공지를 보았던 것이다. 헛헛해진 마음이 어느 정도 달래어졌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악덕 뿐 아니라 미덕이 존재함을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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