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세월과 한 평의 공간

카잔 2015. 5. 4. 16:23

 

시간은 사람을 바꾼다. 어떤 이에게 아침은 생기를 준다. 어떤 이에게는 저녁이 그렇다. 월초에 힘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월말이면 열정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월초와 월말 모두 삶의 기운을 내는 이들도 있다. 내가 그렇다. 한 달의 시작 시기나 마무리할 즈음에 나는 삶을 돌아보고 힘을 내고, 이런저런 시간마다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2015년 5월 2일 새벽이 그랬다. 나는 새벽 2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공부했다. 오롯이 한 작가의 책을 읽었다. (수잔 손택의 에세이 다섯 편이다.) 시간은 나를 매혹했다. 시계를 확인할 때마다 2시간, 3시간씩 지났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지난해를(2014년) 힘들게 보냈다. 우정, 성취, 사랑을 상실했고, 그때 충격이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유실한 노트북 데이터로 고통스러웠는데, 요즘엔 세상을 떠난 친구가 몹시 그립다. 상실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지만 아직 그러질 못한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힘을 내자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5월이 시작되면서 여느 때보다 간절하게 다짐했다. 5월 2일의 흡족한 공부는 특정한 시간대가 내게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례다.

 

수잔 손택은 발터 벤야민을 다룬 에세이에서, 그의 회상에는 시간 순서가 없음을 지적했다. 기억이라는 작업은 시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베를린 연대기』에서 벤야민은 “자서전은 시간, 순서, 삶의 지속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것과 연관 있지만, 나는 공간, 순간, 불연속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썼다. 회상하는 작업은 시간대별로 시도하기보다는 공간별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과거 회상이 아닌 현재의 경영에는 시간과 공간 모두가 중요할 것 같지만,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은 의미 있다. 손택은 말한다. “공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공간도 사람을 바꾼다. 여명이나 저녁 어스름한 시간대는 햇살의 양,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하늘 색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독특한 정조를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공간도 복합적인 요소를 버무려 저마다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병원에 갔을 때 드는 생각과 바다 앞에 섰을 때의 생각 그리고 좋아하는 카페에 앉았을 때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 공간도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나를 고무시키는 공간들이 있다. 서점에 가면 나의 에너지가 높아진다. 카페에서는 열정이 샘솟는다. 2015년 5월, 나는 연희동의 어느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썼다. Sam Ock의 노래 ‘Beautiful People'이 카페를 떠다닌다. 내 취향은 아니나 흥을 돋운다. 기분을 더욱 흥겹게 만들고 싶어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아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골랐다. 창가로 넘어오는 봄바람이 조금은 쌀쌀하여 카페 안쪽으로 옮겼다. 한결 따뜻해졌다. 내 뒤편 테이블에는 한 가족이 앉았다. 두 딸과 부모는 맛난 햄버거 스테이크와 파스타에 행복해하며 접시를 비우고 떠났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을 지었다.

 

시간이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 그것은 축적된 시간을 말한다. 한줌의 시간은 삶을 바꾸지 못한다. 오래 축적된 시간, 다시 말해 세월이 사람을 바꾸리라. 그러니 자신만의 시간대를 자주 누리는 것은 훌륭한 삶의 경영이다. 공간이 인생경영을 돕지만, 그것을 찾아 매일 세상을 유랑할 수는 없다. 한 평의 공간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꾸어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그곳에 자주 머무는 일상이라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이룰 것이다.

 

'™ My Story > 거북이의 자기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verse] 성찰일지 (1)  (0) 2015.05.14
돌연한 출발이 필요할 때  (0) 2015.05.11
저물어가는 햇살은  (6) 2015.04.28
수양을 추구하는 사람들  (2) 2015.04.27
법칙 만능주의 벗어나기  (0) 201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