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저물어가는 햇살은

카잔 2015. 4. 28. 23:16

저물어가는 햇살은


반년 만에 친구를 만나니

6개월 전 내 모습이 보였다

반년 동안 이룰 것을 다짐하던

지금보다 조금은 젊었던 나


미루고 또 미루는 고질병에

세월이 끝없으리라는 착각까지

뜨거움도 결실도 없는 삶으로

친구 앞에 뻔지르하게 섰다


세월은 구름처럼 흘렀건만

웅덩이에 고여 있었던 나

다짐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4월 햇살이 밝아 민망했다


그 누굴, 그 무엇을 탓하리

처음엔 친구에게만 부끄럽더니

이내 만물을 쳐다보기 힘들더라

저물어가는 햇살이, 빛났다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기뻤다. 우리는 밝은 햇살처럼 웃었고, 맛난 식사만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이번 만남 때까지 해내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부끄러웠지만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다. 눈 앞에 선 친구와 생각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나만의 생각에 함몰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연남동 골목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았다. 일어서기 20분 전, 내가 말했다. "잠깐, 서로의 시간을 갖자." 이후 약속이 있었던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쉼을 주고 싶었고, 나도 잠시 생각을 하면 좋았기에. 편안하게 20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 부끄러움을 살폈다. 시시했던 최근 반년의 삶과 그윽하게 빛나는 햇살이 대비되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앞표지에 시 같은 걸 끼적였다. 부끄러움을 잊을까 저어되기에, 여기에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