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수양을 추구하는 사람들

카잔 2015. 4. 27. 10:41

서애 류성룡 선생의 옥연정사 (안동 하회마을)

 

1.

주말에 안동 옥연정사에 다녀왔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의 기록을 담은 제132호 국보『징비록』을 '옥연정사'에서 썼다. 정사 출입문 앞에 서면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보인다. 부용대와 함께 하회마을 전경을 즐기기에 맞춤한 장소다. 정사에 들어서기 전 낙동강을 내다보니, 잠시 휴식하면서 강 너머 고향 마을을 바라보는 서애 선생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아름다운 고향과 전란의 비참함이 대비되면서, 『징비록』 집필에 박차를 가하셨으리라. '다시는 이런 전란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야.' ('징비'는『시경』 소비편 "나는 지난 날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基懲而毖後患)"에서 따온 구절이다.)

 

2.

퇴계 선생은 61세가 되어서야 도산서당을 완공했다. 학문을 연마하고 자연을 감상할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퇴계 뿐만 아니라 조선 선비들의 이상이었다. 퇴계도 31세 때부터 거처마다 지산와사, 양진암, 죽동, 한서암, 계상서당을 지어왔다. 도산서당을 완공하는 데에는 5년여가 걸렸다. 자재와 인부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돈이 있더라도 마을이 아닌 산 속에서 정자를 짓는 일은 복잡했던 까닭이다. 황준량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집 짓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니 때로 혼자 웃습니다." 좋아하는 일도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임을 새삼 되새긴다.

 

3.

'정사(精舍)'는 서재나 학사(學舍)라는 뜻으로, 서당과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다. 퇴계도 도산서당을 짓고서 '도산정사'라는 표현도 썼다고 한다. 도산서당이든, 무이정사든 모두 학문을 연마하고 자연을 즐기는 공간인 셈이고, 이는 휴식을 취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정자'와는 구분된다. 16세기부터 선비들이 정사를 짓기 시작했다. 개인의 수양을 강조했던 성리학적 처세관 때문이기도 하고, 농촌 지역의 안정된 경제력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농업 생산이 앞선 낙동강 상류의 영남 지역, 영산강 상류의 담양 지역에 이름난 정사가 많았다. 정사 옆에는 휴식을 위한 정자를 따로 짓기도 했다. 봉화의 한서당과 청암정, 경주의 독락당과 계정이 그 예다.

 

4.

주자는 정사 매니아였다. 40세가 되던 1169년에 한천정사를 지었다. 이듬해에는 노봉산 정상 부근의 운곡에 초당을 세워 회암이라 불렀다. 54세 때에는 복건성의 명산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지었다. 그의 정사 편력은 세월도 꺽지 못했다. 63세에 고정을 짓더니, 65세 때에는 고정 근처에 죽림정사를 세웠다고 한다. 주자는 주로 한천정사와 고정에 머물렀다고 하나, 후대에 주자의 정사로 알려진 것은 경치가 빼어나고 주자의 시에 등장하는 회암과 무이정사다. 주자의 삶은 조선 선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6세기 화가 이성길이 <무이구곡도>를 그리며 상상했고, 많은 선비들이 정사를 짓고 주자의 학문을 공부했다.

 

5.

경치가 수려한 곳에 작은 집을 지어 공부하고 자연을 즐기는 일이 어찌 주자와 조선 선비들만의 이상일까. 수양을 즐거워하는 성향은, 죽림칠현에서부터 몽테뉴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그런 성향을 지닌 이들은 재물보다는 기품을, 명예보다는 자유롭게 공부하고 사색하는 삶을 추구했다. 퇴계처럼 학문을 완성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사상가적 삶도 깊은 울림이 있고, 서애처럼 오랜 세월 동안 바람직한 재상의 모습을 보여 준 경세가적 삶도 아름답다. 산 속 아름다운 정사에 머물든, 혼탁한 정치 세계에 머물든 스스로를 지키는 정신적 역량이 중요하리라.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읽었던, 퇴계의 시가 가슴을 친다.

 

백로

 

당당한 게 절로 기품이 있고

희디흰 건 마치 눈과 같아라.

고기 잡는 데 너무 애쓰지 말거라

모래와 진흙이 묻을까 두려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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