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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의 최고봉은 모든 산의 높이를 안다!

카잔 2008. 5. 14. 09:10


[칼럼] 산맥의 최고봉은 모든 산의 높이를 안다

저자의 박식함에 감탄을 하며 『역사란 무엇인가』의 책장을 넘겼다. 내 머리에 방아질을 해대지 않는 책이라면, 내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고 말했던 이가 누구더라? 암튼, 이 책은 읽는 내내 나의 머리를 흔들어주었다. 정말 머리를 흔들면 그렇듯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다. 저자의 지성을 쫓아가기 힘겨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명저를 읽어나가야겠다. 명저를 읽으며 누리는 유익은 많겠으나, 요즘 나는 명저가 다른 유명한 책들의 진짜 위상을 찾아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말하자면, 명저는 인기 있는 책들의 ‘제 위치 찾아주기’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인기’와 ‘실력’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책의 날개와 띠표지에는 그 책을 선전하는 문구가 있다. 이런 문구들은 짧은 시간에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그 책이 차지하는 위상과 지성사적 위치가 어떠한지는 알 수가 없다. 일반인들에게 지성인들은 모두들 대단한 분들처럼 보인다. 산 아래에서는 높이 치솟은 여러 산맥의 각 봉우리 높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일반인들은 각 지성의 높이가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각 산맥의 최고점은 구름 위에 있기에 산을 조금 오른다고 하여도 여전히 구름 아래로 드러내는 산허리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산맥의 최고봉은 다른 봉우리의 높이가 어떠한지 안다. 어떤 산은 협곡이 깊어 위험할 수 있음도 바라본다. 어떤 산에는 과실나무가 가득하여 오르는 이들에게 온갖 종류의 영양분을 제공하지만, 어떤 산은 전혀 그렇지 못함도 본다. 일반인들에게는 모든 지성인들이 그저 대단히 높은 산맥으로 보였으나, 지성 중의 지성이라고 불릴 만한 탁월한 지성인들은 다른 지성인들의 한계와 그가 지성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준다.

이 생각은 지성인이라면 맹목적으로 존경해 왔던 나에게, 이제는 수많은 지성인 중에 내가 추구해야 할 지성인은 정말 소수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위대한 지성은 많지만, 나의 사명과 비전에 꼭 맞는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지성은 소수일 것이다. 이 말이 모든 위대한 지성이 교훈과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동시에, 내 안의 위대함을 발견해야만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길을 밝혀 줄 지성은 누구란 말인가? 이 분을 찾기 위해서 나는 부지런히 명저를 읽어나가고 싶다. 『일의 발견』이라는 책도 많은 유명 지성들의 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전까지는 유명한 지성들은 모두 같은 “위대한 지성‘이라는 범주 속에 집어넣었지만, 지금은 그 지성들을 사상에 따라, 나의 신념에 따라 분류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위대한 지성들의 견해를 많이 배우고 삼켜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멀고도 멀었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부지런히 공부하며 삼키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에 나만의 사고의 얼개와 철학이 생겨날 것이고, 그 즈음에는 삼켜대기만 했던 지성들 중에 다시 게워낼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안에는 나의 스승만 남겠지.

나의 일생동안 내 안의 그 스승을 넘어설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제자로 남게 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내 마음은 기쁘다. 멀리서 볼 때에는 험준하고 높아 보이는 산일지라도 산 아래까지 가까이 가게 되면, 반드시 오르는 길을 발견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요즘에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車到山前 必有路(거도산전 필유로 : 산 앞에 다다르면 반드시 길이 있기 마련이다)

                                                                                                                   - 2007. 5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