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첫 눈 내린 날

카잔 2015. 11. 25. 23:52

첫눈

 

오늘 첫눈이 왔다
아주, 희미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쉽게도, 금새

 

그래도 눈이었다
분명, 눈이었다

 

흔적도 없이,
이건 틀린 말이었다

 

내 마음에 실눈이 
소복이 쌓였으니

 

첫눈은 하나의
실체였고 존재였다

 

존재는 형체가 사라져도
흔적을 남긴다

 

그대여,
첫눈처럼

 

자리를 떠날 때마다
누군가의 마음에 흔적을!

 

*

첫 눈이 오면 꼭 만나고 싶은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첫눈에 관한 속설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첫 눈 오는 날의 만남을 핑계로 어떻게든 엮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첫 눈을 맞지 못했다. 기억이 맞다면, 그 날 나는 홀로 눈 오는 밤거리를 달렸고 집으로 돌아와 시를 썼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나는 시를 잊었고, 그녀는 결혼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오늘, 첫눈이 내린 순간은 찰나였다. 보지 못한 사람도 많겠지만 분명히 눈이 왔다. 얼핏 생각하면 세월 역시 첫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세월은 흘러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한 사람의 존재에 켜켜이 쌓인다. 분명히 나는 그 세월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았었다. 세월과 함께 선명히 기억될 순간이 많은 인생을 살아야겠다. 첫 눈처럼 작은 존재여도, 흔적을 남기는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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