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술병이 나긴 했지만...

카잔 2015. 11. 22. 09:50

무수골 술잔치

 

한 잔 두 잔
술잔이
잘도 비워지던 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오고갔던 시간

 

파전과 막걸리가
사라지면
금세 “여기요” 했던 사내들

 

사람 좋고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홀짝 홀짝 한 두 번은 벌컥

 

“형님! 제 생각이 맞는지
한 번 좀
들어봐 주쇼.” 나도 끼어들고.

 

형님은 아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고갤 끄덕이며
얘길 듣더니 장광설을 쏟아내고.

 

환한 대낮에 시작한 술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더니
시간은 흘러 자정을 향하네.

 

들어올 땐 쌀쌀했던 늦가을인데
나설 때에는
몸이 뜨겁고 마음은 봄이로다.

 

달달하다고 속삭이며 한잔만 더
달라하던 위장은
귀갓길에 춤을 추기 시작했네.

 

이튿날 하루 종일 집에 드러누워
내 뱉는 후회,
다시는 주량을 넘지 말자.

 

후회마저 밀어내는 어젯밤 대화의
훈훈함 그리고 무수골
어느 허름한 막걸리집의 추억.

 

*

 

엊그제, 3개월 동안 함께 공부했던 사내 다섯이 도봉산에 중턱에 올랐다. 일찍 나서야 하는 일행이 있어, 서둘러 산을 내려와 막걸리집에 들어갔다. 오후 3시 남짓한 시각이었다. 그때부터 밤 11시가 넘기까지 세 번의 술집을 돌며 술을 마셨다. 장시간 술잔치를 즐긴 데에는 대장 사내가 모두를 붙잡은 탓이 가장 컸지만, 생경한 그 자리가 나는 즐거웠다.

 

우리는 문학, 작가들, 서로의 삶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급하게 마신 것은 아니나, 워낙 많이 마신 탓에 나는 술병이 났다. 끌려서 지하철을 탔고 겨우 귀가했다. 어젯밤까지 꼬박 24시간을 고생했다. 서른 넘어 이리 많이 마신 적은 이번이 세 번째인 것 같다. (상파울로, 청담동, 무수골) 삼일째 아침(오늘)에야 정신이 좀 들었다. 대화 내용은 어렴풋하나, 마음이 오간 시간이었기에 어설픈 시어로나마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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