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와우팀 이야기

<연지원에 대하여> 단상

카잔 2016. 3. 25. 11:29

 

 

『연지원에 대하여』(클릭)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세상에, 이런 제목의 책이라니! 말렸던 제목이지만 결국은 이리 됐다.) 제목 그대로 나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와우 초대 MVP를 수상했던 이연주다. (아, 이제 무슨 말을 써야 하나? 음... 할 말이 달아났다. 포스팅 하나 쓰기가 이리 어려울 줄이야.)

 

두 번이나 꼼꼼히 읽고, 한 번은 빠르게 읽어낸 책에 대해 쓰는 글이라면, 그야말로 술술 써내려가게 될 텐데, 나는 이 책을 쳐다보며 자주 할 말을 잃었다. 할 말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에 대한 책을 소개함에 대한 민망함이 더 큰 이유겠다. (두서 없이 체계도 없이, 그저 생각을 쫓아가 보련다.) 서평이나 리뷰이기보다는 '책에 대한 소감' 정도가 되겠다.

 

1.

저자는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연지원에 대해 썼냐고. 나는 답했다.“나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스승의 삶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때로는 단순함이 구실이다.> <나는 연지원과 교류했다. 내가 쓰는 단어, 사유를 돕는 개념, 삶의 방식은 그와 교류한 결과다. 연지원이라는 환경이 남긴 운명이다. 나를 말하기에 앞서 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 발표작의 주제를 연지원으로 선택했다.>

 

"때로는 단순함이 구실이다."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됐구나" 싶었던 문장이다. 책의 첫인상에 흡족했던 것이다. 흡족감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도 유지됐다. 글들이 좋았다. 내 성향으로 보건대, 만족하지 못하는 글이라면 (아무리 나의 제자라고 해도) 출간을 미루자고 했거나, 글을 소개하는 일에 내심 떳떳하지 못했으리라. 『연지원에 대하여』에 실린 글에는 거의 만족했다. 내 얘기가 많아 부끄러울 뿐, 책 자체가 부끄럽지는 않다.

 

2.

서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 책은 연지원에 관한 평론이다. 내가 스물 두 살부터 서른 한 살까지, 10년 동안 영향 받아 온 스승에 관한 글이다. 그를 통해 내 일부를 드러내는 자전적 에세이로써의 역할도 꾀했다. 문장으로 복원된 그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여기, 괜찮은 지혜의 터가 있음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적 스승에 관한 단상이면서 그를 돋보기 삼아 들여다 본 나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미안함을 느꼈다. 그와 나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대목에서 특히 그랬다. 선생이 유명하면 학생들이 얼마간의 후광효과라도 얻을 텐데, 나와 와우스토리연구소(이하 와우랩)은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다. (제목이 못마땅했던 이유다. 제자의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기를 원하는 나로서는 '연지원에 대하여'보다는 좀 더 매력적인 제목이길 바랬던 것.) 와우카페는 비공개이고, 와우랩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도 빈약하다.

 

3.

호메로스는 영웅들을 기록으로 남겨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가 영웅들이 아닌 평범한 인물을 기록했더라면 서양문학사에서 지금처럼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영웅이 위대할수록 시인마저 빛나는 법이리라. 뒤집어 생각해도 옳다. 호메로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딧세우스를 지금처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영웅들 역시도 호메로스에게 빚진 바가 있는 셈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고, 이연주는 호메로스가 아니다. 기실 영웅과 호메로스는 괴리감이 큰 비유다. 둘은 일개 나라(대한민국)의 영웅과 걸출한 작가의 조합도 아니다. 작은 커뮤니티의 선생과 학생이요, 리더일 뿐이다. 그 커뮤니티가 13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구성원들의 다수가 자기이해를 경험하고 성장한다는 점 정도가 내세울 만한 특징이다. 이 책이 호메로스처럼 2천 8백년의 세월을 버텨낼 리는 만무하고('2년 8개월 이상은 판매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웃는다.) 모든 사람에게 권하기에는 멋쩍다.

 

4

나는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더불어 필요한 이들만 읽었으면 좋겠다. 이 대극점에서 나의 고뇌와 이연주를 향한 미안함이 탄생한다. 책의 제목이 <구본형에 대하여>, <수잔 손택에 대하여>라면 판매량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대하여'는 덜 매력적인 제목이다.) 대극하는 지점을 들여다보니 '이 책은 누구에게 유익할까' 하는 질문이 보인다. 나는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와우들과 블로그 애독자 분들이 나의 답변이다. 와우들은 재밌게 읽으시리라. 와우 이야기가 많고, 와우리더로서의 연지원이 가진 장단이 서술되어 있으니까. 연지원이라는 글쟁이, 와우리더, 강사에게 관심이 있는 블로그 애독자 분께도 유익한 책이리라. 나에 관한 사실적 정보들이 풍성하고 나의 집필 방식, 강사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강사론, 독서가로서 어떻게 책을 읽는지에 대한 노하우들이 많이 담겼으니까.

 

5.

글쓰기 수업 때, 이연주의 글은 호된 가르침을 비켜가지 못했다. 나는 간간히 그의 가슴을 찌를 피드백도 해야 했다. 형용사와 부사의 남발, 허세가 깃든 문장, 대상을 붙잡지 못하는 헐거운 표현 등이 자주 건넸던 피드백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성장하고 변화된 모습에 놀랐다. 이연주는 어떻게 까탈스러운 선생의 입맛을 만족시켰을까. 나의 답변은 세 가지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장이 좋아졌고, 독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고, (자기 의견으로 귀결되지 않고서) 대상을 서술했기 때문이다.

 

1) 그녀는 문체로 많이 고민했었다. 그 고민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번 책이 보여주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어 담백하고, 표현이 정확하여 명료하다. 2) 그녀는 사유하는 영혼은 아니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유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아직은 종종 추구하는 가치나 결심, 미래으로 자신을 서술하긴 하지만.) 3) 오랫동안 포스트잍과 가슴으로 간직했던 선생의 피드백 그리고 블로그를 폭넓게 읽어 건져낸 인용문으로 '연지원'이라는 대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했다. 이 점이 나의 만족들이고, 이 책의 장점이리라.

 

6.

이 책은 이연주를 수년 동안 지켜 본 와우들에게 '성장하는 영혼'의 생생한 사례 하나를 보는 경험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놀라움과 감탄, 질투심을 안길 텐데... 와우들이 그런 감정들을 진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긍정과 부정의 감정이야말로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니까. 독서가로서든, 글쟁이로서든, 강사로서든, 리더로서든 연지원에게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균형을 추구하는 영혼'에 관해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식하는 것들만 배울 수 있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생각하면, 나를 정확히 서술해 준 저자에게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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