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멋진 글쟁이, 좋은 사람

카잔 2016. 6. 6. 09:45

“어떤 사람들과 인생을 함께 했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p.214) 구본형 선생님 에세이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잠시 사소한 것에 관심을 빼앗겼다. 인용문에서 ‘바로’와 ‘가장’이라는 부사가 빠지면 더 나은 문장이 될 텐데, 하고 생각한 것이다. (몇 페이지 앞에서 선생님은 『파이드로스』와 『크리톤』을 두고 “플라톤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이라고 표현하셨다. ‘가장’은 ‘것이다’라는 표현과 함께 선생님 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군더더기다.)

문장의 군더더기에 먼저 눈이 가지만, 중요한 교훈을 놓치거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서 살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문장의 지엽적인 것들을 붙잡거나 디테일한 평가에 집중하느라 대중성이 떨어진 글들을 쓴 적도 많았고,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느라 중요한 일에 주어야 할 시간을 낭비한 적도 많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어떤 시기를 어리석게 또는 한심하게 살기도 하지 않는가. 나의 시간경영 수준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점수보다는 상회하리라. 군더더기 문장에 손을 대는 것처럼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살지는 않아야 하리라. 이런 믿음을 추구하며 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나는 후회한다. 평균 언저리에 머물며 안주했던 날들을. 그리고 이해와 용서에 서툴렀던 날들을 반성한다. 반성하는 와중에도 선생님 글을 읽으며 핵심을 취하기보다는 또 군더더기에 눈을 팔고 말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었다.”(p.197) ‘것’의 반복을 고치느라 읽던 책을 잠시 멈추었던 게다. 나야말로 선생님의 책을 읽은 이유가 선생님께로부터 배움을 얻기 위함인데, 사소한 표현에 번번이 머문다. 이런 모습을 어리석음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그것은 나를 기만하는 일이다. 선생님보다 디테일을 따지는 성향일 뿐이다. 나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선생님 글이 지닌 넓은 마음과 통찰 그리고 성실함을 본받아야 하리라.

다시 선생님 말씀, 인생을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 말은 뒤집어도 유효한 지혜가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떠한가는 그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는지 말해 준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사람들을 만나려면 나이가 들거나 상황이 힘겨워져도 내가 먼저 멋진 사람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의 처음 두 문단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나의 지질한 일면을 담았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바꾸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디테일과 중요하지 않은 사소함을 구분하고 싶다. 작은 것들이 모조리 사소하지는 않으니까. 전문가는 디테일에 강한 이들이고, 마니아는 작은 차이를 구별해내는 사람들이다.

글은 자신만의 생각과 탁월한 통찰을 담아내는 일이 우선이다. 문장의 군더더기를 처리하는 일은 차후의 문제다. 나는 멋진 글쟁이가 되고 싶다. 문장 연습도 중요하지만 생각 훈련과 삶의 고양을 위해 노력하는 쪽을 우선으로 선택해야 하리라. 화장만으로 인상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원대하고 담대한 주제의식, 정확한 지식, 작고 사소한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내는 감수성부터 키워가고 싶다. 건강한 식재료를 써야 훌륭한 요리가 탄생하듯 건강한 사상을 섭취해야 훌륭한 글이 나온다.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내 관심사를 건강하게 단련시킬 위대한 책들만큼은 평생 읽어나갈 것이다. 부디, 내 글에 은은한 멋이 흐르기를!

삶은 애완견 밥그릇을 채워 주는 일이나, 집 안을 먼지 하나 없이 닦아내는 물걸레질보다 심오하다. 그것보다는 의미, 기쁨, 관계가 중요하다. 1990년대 후반의 베스트셀러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는 제목 만으로도 눈길을 사로 잡는다.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게 현혹되며 살기 때문이리라. 때때로 삶은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챙겨 먹고, 고통과 마주하는 것 뿐이기도 하다.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알 파치노의 락커룸 연설이 떠오른다. "나이를 먹게 되면 여러 가지를 잃는다. 그게 인생이야." 의미, 기쁨,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 밥 먹고, 스포츠에 현혹되고, 고통이 존재하는 일상적인 삶을 부정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거룩하다가도 때때로 세속적인 사람들이 깊은 삶을 살리라. 한없이 이상을 내다보다가도, 냉철하게 현실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탁월한 삶을 살아내리라. 지혜는 조화로움이다. 지혜는 재미와 진지함 중간 지대에, 광장과 밀실 사이 어딘가에, 의무와 소원의 균형 지점에 존재한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는 지혜를 추구했고, 탁월한 프로페셔널을 꿈꾸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지만, 도전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익숙한 일을 계속하는 법이니까." 헤세의 소설에 등장하는 크눌프의 말이다. 모든 꿈을 내려놓더라도, 글쟁이와 또 하나의 꿈만큼은 추구하련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서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세워주어라. 이런 가치를 믿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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