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서울 이곳은] 넓고 자유로운 마음

카잔 2016. 8. 2. 12:56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1994년에 방영된 드라마 <서울의 달>의 테마곡 <서울 이곳은>의 첫 소절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위로를 주는 노랫말이다. 도전적인 경험 앞에서 망설일 때, 고향보다 서울이 낯설게 보였을 때, 삶을 잘못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소절을 부르곤 했다. 종종 영화 <박하사탕>의 명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도 떠올리면서.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열차를 타고 서울에 접어들 때, 특히 서울역을 앞두고 한강을 건너갈 때 낯섬에서 오는 서글픔이 들었다. '내가 타지에 왔구나...' 사는 곳이 낯설 때의 서글픔은 평생을 고향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이해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낯섬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서울 이곳은>은 이럴 때마다 내 귓가를 맴돌았다.


서울 생활은 15년이 지났다. 고향보다 서울이 익숙해진 지도 오래되었다. 서울 곳곳의 맛집은 알아도 고향에서는 유명 음식점도 모르기 일쑤다. 교통이나 도로 상황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는 여전하나 마음은 서울시민이다. 딱 한 곳만이 나를 낯설게 만든다. 한강! 한강에 가면 나는 내가 이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서울 이곳은>이다. 


왜 한강일까. 노랫말 어디에도 '한강'은 없지만, 드라마에서 한강은 상징적인 장소다. 달동네(지금의 옥수동 지역)에 사는 두 청년(한석규와 최민수) 그리고 두 여인(채시라와 김원희)은 사랑의 관계로, 원수지간으로 서로 뒤얽힌다. 다툴 때마다 달동네 빈 공터로 나간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래서 뜻밖의 통쾌함이 찾아드는 공간이다. <응답하라 1994> '서울 이곳은' OST가 한강을 배경으로 시작됨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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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정적인 경험이 있다. 나는 그리 믿는다. 드러커는 자서전의 첫 머리에서 "시시해 보이는 인물도 자신의 관심주제로 가면 열정적으로 변하더라"고 썼다. 나도 그러하리라. 다섯 번 이상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지만, 노래로 가면 다르다. 수백 번 이상을 들었던 노래가 수두룩하다.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 서태지의 노래들, 특히 1집과 2집은 전곡을 수백 번 들었다. 모두 합치면 수천 번이 될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이상은의 몇몇 곡들도 100번은 훌쩍 넘게 들었다.


많이 듣다 보니 그 노래가 나의 영혼이 되었다, 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곡이 있을까 싶다. 나도 궁금하다. 어떤 음악은 내게 영향을 미쳤고, 당시의 순간을 이해하거나 나의 삶과 화해하는데 도움을 받긴 했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으로부터 얻은 위로는 분명 따로 포스팅해야 한다. 변진섭의 '숙녀에게'가 준 싱그러운 감정은 삶의 선물 같다.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삶을 새로운 태도로 살게 만든다. 삶을 이해하거나 잘 살도록 만드는데 일조하는 도움이라면 아무리 작더라도 가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직접 만들거나 부른 노래는 아니지만, 30년 동안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떨림으로 만났던 곡을 말하려는 생각을 서른 즈음부터 가졌던 것 같다.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약점이다. 오랫동안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어떤 곡들을 다룰지는 머릿속에 정리된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실천은 더뎠다. 생각은 진지해도 실천하는 마음은 가벼워야 행동이 빠를 텐데... 그래서(!) 결심했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실천하기로!


첫 곡은 <서울 이곳은>이었다. 첫 곡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곡도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곡도 아니다. 이 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었을 즈음,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때, 인천의 주안동 도로를 주행하던 중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듣게 되는 좋아하는 노래는 내게 축복이다. 나는 그 곡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이처럼 진한 행복이 공짜라니!) 실제로 글을 쓴 것은 '작고 가벼운 실천'을 권한 EBS 김민태 PD의 권고도 계기가 됐다. 일면식도 없지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