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용기의 전사 라케스처럼

카잔 2016. 6. 20. 17:59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나보다 더 젊은가 또는 아직은 유명하지 않은가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소이다. 소크라테스님, 나는 그대에게 나를 맡길 테니 그대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나를 가르치고 내 의견을 반박하시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한테 배우시오. 그대와 내가 함께 위험에 빠졌을 때 자기가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대가 자신의 용기를 입증한 그날부터 그대는 내게 그런 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그대는 좋으실 대로 말하고 우리의 나이 차이 따위에는 개의치 마시오." (『라케스』,  천병희 역)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라케스』에 나오는 말이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하나씩의 미덕을 다룬다. 『라케스』는 용기를 주제로 하는 대화편이다. 라케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404년) 때 활약한 아테네의 용감한 장군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18년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아테네 군을 지휘하다가 전사하고 만다. 장군은 사망하기 한 두 해 전에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인용문이 그의 일부다. 플라톤이나 라케스를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른 여섯 분에 관해 몇 마디를 쓰고 싶다.


최근 7개월 동안 진행된 열 번의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참여했던 여섯 분은 모두 나보다 연배가 높고, 하나같이 배움을 사랑하며,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성장하기를 열망하는 중년의 청춘들이다. 라케스처럼 선생의 나이를 개의치 않고 전심을 다해 배우셨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배움을 시작하거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배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소크라테스 역시 용기란 중무장한 보병에게만이 아니라, “욕망을 수행하는 상황”이나 “두려움이 수반되는 상황”에서도 필요한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수업은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우리는 꽤 많은 배움을 주고받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쌓여갔다. 마지막 수업에서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글쓰기 수업도 좋았지만, 사람들마다 다른 성격 유형을 배웠던 것도 저는 정말 좋았어요.” 열 번째 수업은 수료를 기념하여 경주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잠시 잊고 ‘함께하는 즐거움’에 집중하면서 이틀을 향유했다. 배움과 애정이 깊어진 만큼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기보다는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다가온 이들도 계셨다. 그분들조차 아쉬움을 잊으려고 애썼다.


여행 첫날밤에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대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다른 이를 배려하느라 좀처럼 내면을 내보이지 않던 분이 속내를 꺼내어 준 덕분이었다.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나도 끼어들어 논의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발언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고 인간이해에 대한 또 하나의 배움을 얻었던 시간이었다.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라케스는 이러한 용기도 갖춘 사람이었다.


“토론에 대한 내 생각은 이중적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론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나는 어떤 사람이 미덕이나 지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가 진실한 사람이고 자기가 말한 대로 살아간다면 그의 언행일치와 조화를 보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중략) 반면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짜증나게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을 잘할수록 나는 그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어 나를 토론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답니다.”


라케스에게서는 용기의 여러 면모 중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할 줄 아는 용기가 돋보인다. 그는 언행일치의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는 짜증 날 때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짜증나지 않는 척하며 견뎌내는 일은 라케스와는 거리가 멀다. 라케스와 소크라테스는 토론의 결과로 용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린다. “용기는 고상한 미덕입니다. 용기는 일종의 혼의 인내인데, 어리석음을 동반한 인내는 용기가 아닙니다. 지혜를 수반하는 인내라야 고상하고 훌륭해지니까요.”


묵묵하고 착한 인내만 해오던 이들이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할 때, 나는 전율한다.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하면서 용기라는 미덕도 후천적으로 배울 수 있음을 감동하고 절감한다. 경주여행은 끝났고, 글쓰기 수업도 마쳤다. 선생도 학생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행은 어제 일이 되었고, 수업은 과거가 되었다. 나는 우리가 배운 미덕들 중에 용기도 포함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용기가 “욕망을 수행하는 상황”이나 “두려움이 수반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미덕이라면, 수업이 끝난 후 글쓰기를 이어가는 일과 혼자 있을 때에도 한결같이 공부하는 일은 용기다.